위대한 네바, 핀란드만, 그리고 페테르호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위도상 북유럽에 가깝기 때문인지, 한국에서 보던 하늘과는 색온도가 다른 것 같았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헤에 보는 나를, 숙소 앞 고양이가 빤히 쳐다봤다. 뭐하냥.
녀석에게 손을 흔들고 냅스키대로에 들어섰다.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다시 만난 폰타나 운하에는 낮은 구름과 색색의 보트들이 떠있었다. 평화롭고 투명한 풍경이다.
넵스키대로의 끝, 궁전 광장 입구에서 멀리 에르미타주를 발견했다. 한 점당 5분씩만 봐도 소장품을 다 보는데 30년이 걸린다는 곳. 러시아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였지만 오늘은 지나쳐 가야한다. 아쉬운 마음에 서성이다가 길을 재촉했다.
'위대한' 네바강의 도개교를 만났다. (러시아인들은 '위대한'이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데 동의한다.) 큰 배들이 들어오기 위해 들어올려지는 풍경이 궁금했다. 잠시 헤에 보다가 선착장으로 향했다.
쾌속선 한 대가 물을 가르고 달려가는게 보였다. 오늘은 저걸 타고 페테르호프에 가는 날이다.
어딘지 히미코(오다이바를 오가는 우주선 같은 배)가 떠오르는 쾌속선에 올랐다. 아무래도 러시아에 대한 생각을 업데이트해야겠다. 뭔가 낡은 기차와 배, 그런걸 자꾸 연상하게 되니.
'위대한' 네바강을 달린 배는 핀란드만에 들어섰다. 참, 고요한 풍경이었다. Stranger than Paradise - 영화의 어디선가 봤을지도 모를, 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장면을 떠올렸다.
페테르호프에 도착했다. 1723년 건립된 페테르호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50km 떨어져있다. 1,000ha의 부지 위에 20여 개의 궁전과 140개의 분수, 7개의 거대한 정원을 조성했는데, 러시아의 베르사유 또는 여름궁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겨울궁전은 에르미타주다.)
수로 끝으로 페테르호프 궁전이 보인다.
궁전 입구는 금으로 장식된 분수정원이었다.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화려해서 또 한참 헤에 쳐다봤다.
분수대 중앙에서는 삼손이 20m 높이로 물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핀란드만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바라봤다. 옛 황제들은 수로를 통해 분수대 앞까지 배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건 참 부럽네.
난데 없는 소나기를 피해 궁전 안쪽을 돌아보고, 서쪽 지구로 향했다. 페테르호프는 워낙 넓어서 하루에 돌아보는게 불가능하다. 더 마음이 가는 쪽만 보고 나와야한다는데, 결과적으로는 전체의 1/4도 못봤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
공원과 유적들을 보려는 계획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온통 핀란드만 사진만 남겨왔다. 사실, 어쩔 수 없이 넋놓고 보게되는 풍경이었다.
풍경속을 서성이다 선착장으로 향했다. 다시 쾌속선을 타고 핀란드만과 '위대한' 네바강을 달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위대한' 네바강의 한가운데에서 성 페테르&파울 요새의 풍경을 만났다. 어딘지 플랑드르의 색이 떠올랐는데, 역시나 이 동네 그림들도 극사실화였나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를 돌아다니다보면 수묵화와 똑같은 풍경들을 만나고는 한다.) 그림을 배워뒀어도 좋았겠다, 생각했다. 이런 풍경 앞에 이젤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일 것 같았다.
떠나가는 배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