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무

by 우아


초록빛이 짙은 무를 먹었다. 나는 바나나도, 토마토도, 무도, 아직 채 익지 않은, 그래서 아리거나 파릇한 맛이 나는, 다시 밭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초록색을 한 것이 좋다. 달콤한 맛을 채 갖추지 못한, 조금 떫을지도 모르는 딱딱하고 덜 익은 맛. 문제는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먹은지 세시간이 지나도록 소화되지 못하고 도리어 역류하듯, 초록 무는 내 위장에서 올라와 목구멍 언저리를 압박해댄다. 왼쪽 가슴과 어깨까지 차고 올라와 온 몸이 초록 무로 꽉 찬 기분이다. 번식하나? 거 얼마나 먹었다고, 제아무리 격렬하게 저항해봤자 몇 시간 안에 내 위산에 의해 분해될 녀석들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힐 수 있는걸까? 내 장기들은 전쟁중이다. 식도와 가슴의 이물감과 불편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있는 쪽은 이 육신의 주인인 나다. 어쩐지 초록 무에게 그만 항복을 해야할 것 같지만, 쉬이 개워낼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세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면 초록 무를 두 조각만 먹었을 텐데! 전쟁의 주범인 입은 모른척 물만 들이킨다. 하여간에 책임감이라고는.


소화해내지 못한 영양소를 온 몸으로 감각하며 어느 일을 떠올린다. 나를 반성하게 하는 순간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행동과,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책임지지 못할, 혹은 의미 없이 공허하게 내뱉었던 문장들. 왜 이리도 여전히 어리숙한 것일까.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같은 분량의 반성과 후회를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바보같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실은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초록의 무를 먹어치운 것 만큼이나. 안다는 믿음은 결코 소화될 수 없는 미신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른채로 다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 걸어나갈 뿐이다. 일부는 흡수하고 일부는 배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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