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이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이 평탄하기만 하랴?
굴곡진 인생의 고통을 극복할 때 그만큼 인간은 성숙해지고 성장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리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세 살 터울의 어린 여동생에게 치이고 오빠에게 구박을 받았다.
오 남매를 둔 여유가 없던 살림살이에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빠 우리 하나하나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 집집마다 거의 우리 집과 형편이 다들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별히 불행하다 거나 가난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오 남매 중 네 번째라 부모의 관심도 거의 받지 못했지만 그리 불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6살 무렵 주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시면서 막내 여동생의 옷을 사 오셨다.
분홍색의 리본이 달린 무척 예쁜 옷으로 기억된다
동네 사진관 아저씨는 그 옷을 입은 동생을 예쁜 공주라며 사진을 찍어 오가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사진관 유리 진열장에 걸어두기까지 했다
나는 그 옷을 만지고 또 만져 보면서도, 차마 내 옷은? 하고 물어보지 못했다.
며칠 밤을 나는 동생의 옷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이 옷 때문에 엄마가 계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과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매우 불행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추석 전날 엄마는 엄마가 입었던 한복을 뜯어 커다란 리본이 달린 보라색 원피스를 만들어 주었다.
여유가 없었던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보라색을 싫어한다.
나는 대학졸업 후 직장을 잡고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옷을 많이 사 입었다.
어릴 적 충족되지 못한 욕구 때문에 입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사 입어야 했다, 그래도 만족할 줄 모르고 한 동안 이 버릇은 지속되었다. 나중에 내 속에 들어 있던 욕구불만의 어린 나를 인정하고 위로한 다음 나는 이 버릇을 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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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매우 마르고 까만 나의 피부색, 단추 구멍 같이 작고 찢어진 눈 때문에 나는 동생과 많은 비교를 당하며 살았다.
오랫동안 외모 콤플렉스를 앓았다 남들이 나를 예쁘다고 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나중에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는 배속에 든 나를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고 했다
(담배 삶은 진 액, 간장 마시기 언덕에서 뛰어내리기 등) 어쩌면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아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자주 담배 진 액, 간장 때문에 내 피부가 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제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할 엄마도 이제 계시지 않는다.
나는 여러 기회를 주신 엄머에게 항상 감사했다 일단 태어나게 해 주신 은혜, 어린 시절을 결핍을 느끼게 해 주셨기 때문에 충만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점 등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체적으로는 정상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몹시 예민하다고 한다.
마음에는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의 내가 있어 자주 나는 나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견디고 이겨냈다.
고생을 했으나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름 파악한 것이다.
그 당시 내 동무들은 공장에 취직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내 여자 친구들 중에는 둘만 대학을 진학했다. 나는 내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안 살림 거덜 낸다며 여자애를 대학을 보낸 걸 흉보기도 했다. 그 이후 나는 동네에서는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로, 또한 사막에 홀로 두어도 살아남을 아이로 다른 이의 뇌리에 남았다.....
살아남기 위해 그만큼 악착스러워진 것 이리라 어린 시절 옷 한 벌의 결핍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전면 장학생으로 뽑혀 내 또래의 여학생과 함께 공부하고 학교에 다니는 조건으로 그 집에 입주해 먹고 자고 용돈을 받았고
대학 때는 여성 회관에서 밤에 도서 정리하는 일을 돕고 기숙사에서 1년 공짜로 살았다.
당시 그 기숙사에는 섬유 공장, 극장 매표소 직원, 의상실 보조원, 해고당한 여 군무원 등 가난한 여 직공들이 함께 거주했다
커다란 방 2층 다디미 침대로 구성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때도 나는 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비록 거찬 밥에 단무지 반찬이 다였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서는 고생하는 딸이 안타까워 자주 눈물을 보였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후일 나를 지우고자 했던 엄마가 너를 지웠다면 큰일 날 뻔했다는 후회의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내가 살아남아 인간 구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번듯한 직장을 잡고 승진까지 하는 걸 보신 후 )을 한다고 생각하신 게다.
과거의 내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오늘의 나로 거듭난 것이다.
지나고 보니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항상 슬기롭게 잘 극복한 것 같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끝임 없이 도전하고 새로워지려고 노력한 결과가 오늘의 내 현실이리라.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이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믿고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의 자존감이 되살아 나고 회복 탄력성이 향상되어 도전 의식이 싹텄다고 볼 수 있다.
나를 키운 나의 역경 극복 유전자가 나의 자식들에게도 전해져 그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은퇴 후 인생 2막도 새로운 도전의 연속일 것이다.
기대하라! 나의 인생 2막을 나는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고 이를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