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렇게 실수를 했다.#

나의 첫 교직 생활

by 김여사


내가 처음 교직 생활을 했을 때다.

나는 대학 내내 과외를 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는 학생을 지도하는 스킬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도한 학생 중에는 일류 대학에 합격한 학생도 있어 과외하는 대학생 중에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경제관념은 높았지만 철이 없던 나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제법 아이들과 잘 통하는 편이었다.

처음 발령 받은 학교도 일번지 학교라 학부모의 관심과 학구열도 높고 학생들의 호응도 높아 학교 생활이 즐겁고 나름 보람이 있었다. 나는 우수한 학생을 잘 지도하는 교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반에 문제 행동을 지닌 현주라는 학생이 있었다. 담임을 맡은 지 보름 정도 되었을 때다. 밤 11시경 파출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술 취한 승객과 함께 택시에 동승해 검문소에서 걸려 파출소로 넘겨져 담임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자취를 하고 있어 주인집 전화번호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고 늦은 밤 파출소의 전화 연락에 집주인 내외는 학교 학생 부장 이었음에도 몹시 언짢아했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서둘러 택시를 타고 파출소로 가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재웠다.

왜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술 취한 아저씨와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내 목소리에는 늦은 밤 파출소에 불려 간 짜증과 나무람으로 가득 차 추궁에 가까웠으리라 짐작이 된다.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평소 그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한 선입견이 앞섰으리라

이튿날 하교 후 아이를 앞세워 집으로 갔다. 도시 외곽에 있는 아이의 집에는 마른기침이 잦을 줄 모르는 명태 같이 마른 병색이 완연한 엄마가 차가운 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먹다가 반쯤 남겨둔 마른 죽 그릇이 보였다. 아이가 하루 밤을 자고 들어 와도 어디서 오는지 물어보지 않고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가정 방문을 위해 내 손에 들려 있던 두유에만 눈길을 주었다.

현주는 대충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엄마가 들으라는 식으로 어젯밤 선생님 집에서 자고 왔어. 우리 선생님이야

그제야 엄마는 아이고 선생님이 이 누추한 집을 어쩐 일로 하고 하며 아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애 아빠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현주가 집을 나가고 가끔씩 자고 들어 오는 걸 알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도와줄 친척도 없고....

선생님께서 우리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부탁드려요,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약값도 없고 끼니를 때울 돈도 없어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나도 집에 월급을 타서 생활비를 부치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현주에 대해 알고 싶지도, 혹 마른기침 속에 숨어 있는 세균이 나에게 옮을 까봐 이 집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짧게 현주가 어젯밤 낯선 사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 파출소에 불려 가 내가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로 파출소로 불려 가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다는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되돌아왔다. 현주의 실망 어린 눈길을 뒤로한 채 그 후에도 현주는 잦은 결석과 학교 선생님들께 주의를 받는 일, 밤늦게 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일,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들이 잦았다.

나는 현주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금전적으로 현주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다였던 것이다

현주에게는 금전적 도움보다는 자기를 지지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이 더 필요했을지 모르는데도.....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현주에게 아픈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자고 당부를 했지만 그날 일에 실망한 현주는 좀처럼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춘기 소녀의 집안 사정과 아픈 엄마, 어쩌면 우리 선생님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을 텐 데, 아이가 느꼈을 실망감과 나에 대한 무너진 신뢰감은 아이를 절망감에 빠뜨렸는지 모른다.

가끔씩 빵과 우유, 기침약을 사서 들려 보냈지만 현주의 반응은 냉담했다.

실망스러운 나의 행동 때문에 무너진 신뢰감은 현주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어고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된 것 같아 나는 내내 괴로웠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을까?

#난 그렇게 실수를 했다#.

나는 공감 능력과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픈 아이의 상처를 감싸고 어루만질 줄 몰랐다.

그 이후 나는 여러 해 동안 담임을 맡고 수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나의 실수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중 2학년 말에 자퇴를 한 현주를 나는 다른 도시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 빵집에서 만날 수 있었다.

현주아니니 현주야 그동안 잘 지냈어, 현주는 싸늘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긴 어쩐 일로? 우연히 빵 사려고 들렸단다.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니?

사장님이 일하는 시간에 쉬면 야단을 쳐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과 할 이야기가 없어요. 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선생님 탓도 아니잖아요

아빠도 우릴 버렸는데 선생님인들 어쩔 수 있나요 저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있고요 저 잘 살 거예요.

그래 잘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락해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빵집을 나왔다.

그 이후에도 현주를 보기 위해 그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현주 어깨를 두드리고 나왔다. 늦었지만 현주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현주가 나의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7개월쯤 지났을 때 현주는 다른 곳으로 가고 없었다. 주인에게 물어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 이후 나도 현주를 잊고 살았다.

뉴스에 불량 청소년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현주를 떠 올렸다.

그 당시 현주는 마음을 둘 곳도 자기가 기대고 의지 할 어른도 없는 무방비 상태였을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지지해 주었더라면....

지금도 나는 가끔씩 현주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부족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지금의 나라면 달랐을까? 적어도 어이를 아픈 엄마와 그대로 두고 도망치듯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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