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의 희로애락#

나는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다

by 김여사


나는 낀 세대의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다

나의 시부모님은 좀 별난 분이었다. 나는 제법 된 시집살이(?)를 했다.

그 당시 시어머니가 갑의 위치에 며느리가 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시누이 셋에 시동생 1명을 둔 맏며느리였다.

그러나 나는 졸업 후 바로 직장에 다니느라 시집살이가 어떤지 알지 못했고 살림이라는 걸 배울 기회가 없었다.

시집을 가서도 친정에서 처럼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철이 없는 며느리였다.

하지만 경혼 직후 나는 바로 시집이라는 현장에 투입되어 실전(밥 하기)에 응해야 했다.

나는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적응해야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시댁에 가 며느리의 본분을 다 해야 했다.

특히 새해가 되면 친정에 오는 딸들과 사위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시댁으로 가서 수발을 들어야 했다.

나도 친정에 가고 싶었지만 맏며느리는 집에 오는 손님맞이를 해야 한다고 하시며 보내 주시지 않았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부모님은 친정을 들먹이며 다시 배워 오라는 등 막말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시누이들 보다는 내가 훨씬 살림 고수인데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막말도 거침없이 했다. 나는 그 당시 공황장애까지 왔어지만 시부모라는 이유로 항변을 할 수도 없었다.

평소 시어머니께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아버지를 흉보시면서 아들(남편 )이 없었다면 시아버지랑은 진작에 갈라섰다,

내가 니 남편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남편 외에도 4남매를 더 두셨다)

결혼 전 남편은 어머니가 고생하신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에게 어머니를 잘 모셔줄 것을 당부했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다 자식들만 아니면 진작에 헤어졌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아마도 가난한 살림살이와 가부장적인 남편 그리고 시집살이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리 시어미니께서는 시부모님이 일찍 돌아 거셔서 시집살이는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특히 장남에게 너만 없었다면 내가 이 고생하며 살지 않았다

다 너 하나를 위해 참고 살았다는 이야기로 아들을 세뇌(?) 시킨다.

부모가 되면 자식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이마저도 너를 위한 희생으로 여기신다.

직장을 다니며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들 둘을 키운 나는 항상 아들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고생을 했지만 아이들도 나 못지않은 고생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립심을 키울 수 있었지만)

며느리를 맞이한 시어머니는 내가 고생 고생하면서 길러낸 내 아들을 낯선 여자인 며느리에게 빼앗긴 느낌 때문에

며느리를 동지가 아닌 적으로 여기시나 보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나는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90세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이다.

나는 예전 시집살이와 현대적인 며느리 시집살이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가장 전통적인 시집살에서 가정 현대적인 며느리 시집살이( 미국인 며느리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며느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다행히 두 며느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현대적인 며느리답게 IT 업계에서 일을 한다. 성격도 쿨하다. 예의도 바르다 인물도 훌륭하다. 이만하면 나무랄 게 없다.

더 바란다면 욕심일 게다.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들에게 이제 아들을 넘겨주니, 이 이후 하자보수나 반품은 불가하다는 통보를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심리적이 독립뿐만 아니라 나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고 경제적 독립도 동시에 했다.

현대적인 시어미니로써의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미국에 있는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집에서 각 각 한 달씩을 살게 되었다..

결혼 후 함께 살아 보기는 처음이다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옛날 사고방식의 나와 현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나, 서로 상충하면서 생각이 뒤엉킨다

나는 이제 서냐 시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을이 되기로 했다.

아들을 이웃사촌으로 그리고 며느리의 남편으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은 품에 있을 때 나에게 기쁨과 한없는 미소를 주었으니 그것으로 자식 노릇은 다 했단다. 이제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하거라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나 때는 말이냐"라는 꼰대 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나 때는 나 때로" 끝내고 너희는 너희 방식으로 살아야지

내가 한때 억울하고 부당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며느리에게 강요한다면, 먹힐 리도 없지만 옳지 않은 일이다.

내가 당했다고 해서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그건 그 시대에 태어난 나의 운명이다.

나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대의 며느리이다. 하지만 현재적인 시어머니 이기도 하다

나는 낀세대의 며느리와 시머머니로써의 희로애락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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