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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25. 2023

반지하를 알았지만 이제는 모르는 것 같은

  반지하에 사는 아이의 이야기를 쓴 적 있다. 오래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은 뭐 써?" 하고 묻기에 그 얘길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들이 반지하를 알까?"

  친구의 말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설마 그걸 모를까?

  우리 둘은 동갑내기 고학년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데다, 친구는 유치원 선생님에, 각종 모임도 활발하게 하고 있어서 적어도 집에만 콕 박혀 있는 나보다는 훨씬 '요즘 애들'에 대한 감각이 좋았다.

  "에이, 그래도 들어는 봤겠지."

  궁색하게 대답했지만, 불안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에게 물었다.

  "길동아, 반지하가 뭔지 알아?"

  "반지 하?"

  "응, 아니, 반 지하."

  "몰라요. 모르는데요. 그게 뭐예요?"

  그 난감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열악한 주거 형태에서 거주하는 아이들과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아득함. 이 두 아이들이 모두 나의 독자라면, 나는 어디에 방점을 찍고 무엇을 향해 글을 써야 하나. 이 둘의 고민이 성적이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나 친구와의 관계 같은 걸로 같을 수 있을까. 같지 않을 건 뭔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학원도 안 다니고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 같은 것도 하지 못한 채, 가난과 폭력에 몸서리만 치고 있단 말인가.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재로 자신의 아픔이 전시되는 상처를 남길 것 같았고, 어떤 아이에게는 이해도, 공감도 안 되는 낡은 이야기로 다가갈 것 같았다.

  누구의 상처도 건드리지 않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는지, 있다면 그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엉덩이에 꼬리가 돋아날 지경이었다.

  내가 좀 더 통찰력 있고 사려 깊은 인간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교육 기관에서 정식으로 문학 공부를 했으면 나았으려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두려움을 다 이겨내고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처음 동화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인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후회한다. 그런 마음으로 쓸 수 있는 세계가 아니고, 그렇게 아기자기한 듯 환상적인 이야기 한 편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상징과 은유가 숨어 있는지. 그걸 숨겨놓고도 짐짓 아무것도 아닌 척 시치미를 떼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가만, 그래서 내 꼬리가 지금 몇 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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