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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Aug 30. 2023

독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돌이켜 보면 동화를 쓰기 시작한 초창1,2년은 공모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독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읽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쯤되면 불쑥 드는 의문 한 가지.


"아니, 동화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독자가 누군지 모른다니요. 어린이잖아요, 어린이."


맞다. 문제는 내가 어린이를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아는 것도 아니고 잘 안다고. 왜 그런 착각을 했을까? 한때 나도 아이였으니까. 노인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어린이는 이미 거쳐온 세계이므로 '좀 안다'고 착각한 거다. 심지어 나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린이를 모를 거라는 의심은 요만큼도 할 수 없었다.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쓰는 게 뭐가 어때서?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사람일수록 소재를 자신의 경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나 어릴 때 무슨 일 있었더라? 그때 무슨 생각했더라?누구랑 어디 가서 뭐 했는데 그 얘기 쓰면 재미있겠다... 아니요, 재미있지 않습니다. 하나도 재미없어요.

내가 초등학교를 나왔던 시기는 199X년이다. 지금이 몇 년도야. 2023년. 어머나, 세기가 바뀌어버렸네? 그때의 감각으로 쓴 이야기가 오늘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참으로 무식했다고밖에는. 차라리 앞자리가 확실하게 더 앞당겨졌다면 모를까, 이를 테면 18XX년. 역사동화로 장르도 확실하다. (농담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90년대 감수성은 아무래도 애매하니까 나는 '모른다'는 자세로 시작했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나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다는 거다. 이 아이의 생활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않아요.

초등학생 인구 약 270만 명. 나의 아들과 아들 친구를 넉넉잡아 270명이라 친다해도 270만 명 중의 270명은 그 표본의 범위가 너무 협소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린이를 공부해야 했고, 알려고 노력해야 했다. 어린이를 모르고 동화를 쓴다는 건 글자를 모르고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무용한 일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린이를 관찰하다

나의 어린 시절로도 안 되고,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와 내 친구의 아이로도 부족하다면 어떡해야 할까. 어디에 가면 어린이의 기쁨과 슬픔과 꿈과 희망과 아픔과 분노를 알 수 있을까. 가장 좋은 길은 수능을 다시 공부해서 교대에 진학해 임용을 치르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것인데, 넉넉잡아 20년 정도면 합격할 것 같았다. 내 나이 마흔 둘 플러스 20을 하면 첫 발령도 전에 퇴직....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어린이를 관찰하는 카드는 버리기로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못 되어도 초등학교에 갈 수는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이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 옷은 어떻게 입는지, 말투는 어떤지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 대부분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들렸고, 그나마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악!" "야!" "#-&%@!%잖아!" 따위였지만 의미 있었다.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날은 한 자도 못 써도 동화 작가에 한 발자국 가까이 간 것 같아 약간 뿌듯하기까지 했다.

어떤 날엔 아들의 친구들을 붙잡고 진지하게 취조했다 취재했다.

"너희들 고민 있으면 이모한테 말해 봐."

"없는데요?"

너무도 당당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지만 능숙하게 아이들을 구슬렸다.

"잘 생각해 봐. 하나는 있을 거 아니야. 공부라든가 아니면 여친 문제라든가."

나는 고민이 없다는 애들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쥐어짜면 없던 것도 나오는 . 아이들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없는데요."


어린이를 찾아서

생생한 아이들을 직접 보면서 '실감'을 느꼈다면, 아이들에게서 듣지 못한 생활 모습은 책에서 얻었다. 어린이에 관한 책이라면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쓰신 에세이는 내 주변인만으로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세계를 보여 주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정말 어린이를 몰랐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어린이가 나오는 다큐, 유튜브 채널 같은 것도 도움이 됐다.

동화를 쓰겠다고 동화책만 주구장창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그야말로 동화책 속 어린이로 어린이를 알려고 한 시절이었다. 잘못 꿰어진 내 첫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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