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 책임의 무게만큼 단단해지기

by 생각이 과함

언제부턴가 명절 고향 집 밥상 앞에서

군침이 먼저 돌기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주방을 서성였을 그 뒷모습이 눈에 밟혀 마음이 심란해지곤 합니다.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 보이고,

나의 모든 세계를 지탱해 주던 어머니의 머리가 희어가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의 세계로 들어섰음을 실감합니다.


단순히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현기증인 것 같습니다.

노쇠해 가는 부모님을 부축해야 하는 동시에,

내가 꾸린 가정과 아이라는 무게까지

홀로 짊어져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막막하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이는 사실,

우리 인생을 가장 본질적인 것들로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 교수가 발표한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나이가 들며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재편합니다.

젊은 시절의 뇌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지식을 쌓는 ‘확장’에 몰입했다면,

이제 우리의 뇌는 ‘정서적 밀도’를 쌓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갑자기 인간관계가 좁아지거나

새로운 유행에 무뎌지는 건 퇴보가 아닙니다.

뇌가 가장 본질적인 행복,

즉 가족의 안녕과 깊은 유대감에만 모든 자원을 쏟아붓기 위해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과정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버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하드웨어도 함께 업그레이드된다는 점입니다.

샌디에이고 대학교의 딜립 제스트(Dilip Jeste) 박사가 이끄는 ‘지혜의 뇌과학’ 연구를 보면,

중년 이후의 뇌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와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엽 사이의 연결망이 20대보다 훨씬 단단해집니다.

이를 ‘지혜의 회로’라고 부르는데,

젊은 시절에는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요동치던 마음이,

이제는 부모님의 노화라는 슬픔과

새로운 생명을 향한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드는 것을

‘상실’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젊음을 잃고, 기력을 잃고, 자유를 잃는다고요.

하지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는 성인기의 변화는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입니다.

부모님의 취약함을 지켜보며

나의 완벽하지 않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를 선택하며

나라는 좁은 틀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짐 없는 배는 가볍지만

파도 한 번에 쉽게 전복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짊어진 부모와 자녀라는 무게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단단하고 깊이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 묵직한 책임이 당신을 비로소 어른다운 어른으로 빚어내고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당신의 오늘을 꼭 안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Baltes, P. B. (1997). On the incomplete architecture of human ontogeny: Selection, optimization, and compensation as foundation of developmental theory. American psychologist, 52(4), 366.


Carstensen, L. L. (2006). The influence of a sense of time on human development. Science, 312(5782), 1913-1915.


Erikson, E. H., & Erikson, J. M. (2013). The life cycle completed. WW Norton & Company.


Meeks, T. W., & Jeste, D. V. (2009). Neurobiology of wisdom: A literature overview.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66(4), 355-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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