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기에 가장 아픈 관계 속 '나'를 잃지 않기
지쳐 퇴근한 어느 저녁,
휴대폰 화면에 뜬 부모님의 부재중 전화와
바쁜지 연락이 없구나, 하고 쌓여 있는 메시지를 마주하면
괜히 심장이 묵직해지곤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지만,
어떤 날은 그 언덕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이 보낸 호의가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적 부채'처럼 느껴집니다.
친구나 지인이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법한 말도,
부모님께 들으면 괜히 발끈하거나 속상해지곤 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정서적으로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쉽게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코안(James Coan)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가장 가까운 타인을
'남'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인식합니다.
즉,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서로의 신경계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인 셈입니다.
타인이 던지는 비난은
외부에서 오는 공격이니 방어할 수 있지만,
부모님의 실망이나 불안은
내 안의 면역 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처럼,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가장 가깝기에 가장 안전해야 할 존재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때,
우리 뇌는 갈 곳을 잃고 극심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경계가 흐릿해질 때,
부모는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다 널 위해서" 라는 명분 아래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몰입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감정 영역을 무단 침범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성인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일반인보다 훨씬 높게 측정되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너무 가깝고 끈끈해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결과입니다.
결국 이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불안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이 은근한 서운함으로
당신의 죄책감을 건드리거나,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당신을 통해 보상받으려 할 때,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 스스로가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해 생기는 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가족이기에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은 아주 당연한 신호입니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과
독립된 자아를 형성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며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평생 나를 지켜온 지붕이셨던 부모님일지라도,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해 보세요.
나를 지키는 선을 긋는 일은
오히려 우리가 더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한
가장 건강한 선택입니다.
출처
Beckes, L., & Coan, J. A. (2011). Social baseline theory: The role of social proximity in emotion and economy of action.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5(12), 976-988.
Bowen, M. (1993).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Butzlaff, R. L., & Hooley, J. M. (1998). Expressed emotion and psychiatric relapse: a meta-analysis.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55(6), 547-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