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틀릴 거라면, 오히려 좋아!
얼마 전, 며칠을 끙끙 앓으며 걱정한 일이 있었다. 밤마다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감은 눈 너머로 영화처럼 지나갔고, 아침이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일어났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니, 내가 상상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무엇을 그렇게까지 걱정했었는지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그 경험은 어딘가 허무했고, 동시에 이상하게 익숙했다. 떠올려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애태웠던 밤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그중 실제로 내 삶을 흔든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대체 무엇을 그렇게 예측하려 애썼던 걸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라프레니에르(LaFreniere)와 뉴먼(Newman) 교수는 범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10일 동안 떠오르는 모든 걱정을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30일 동안 그 걱정들이 실제로 현실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추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이 했던 걱정의 91.4%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그룹은 걱정이 100% 빗나간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단 하나의 걱정도 현실이 되지 않은 사람이 가장 흔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이토록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뇌는 미래를 예측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사실 예측하는 데 그리 능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1960년대에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날씨를 예측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우연한 사실을 발견했다. 초기 입력값의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 하나만 달라져도, 며칠 후의 결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 현상을 두고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 수 있다"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잘 아는 "나비효과"의 기원이다.
단순히 "사소한 일이 큰 결과를 만든다"는 교훈 때문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스템은 원리적으로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날씨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인간관계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아무리 많은 변수를 수집하고 아무리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도, 시간이 길어지면 예측은 반드시 빗나간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시나리오들은, 아주 작은 파편 하나만 어긋나도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실현된다. 애초에 복잡계 앞에서는, 예측이라는 행위가 무력하다.
복잡계의 원리가 인생에 가르쳐주는 가장 깊은 교훈은 따로 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장면의 의미를, 당장 이 자리에서는 결코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새옹지마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변방에 살던 노인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 이웃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답했다. 얼마 뒤 그 말은 더 좋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웃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답했다.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그 덕분에 전쟁이 났을 때 징집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낡은 지혜로만 여기지만, 사실 이것은 복잡계에 대한 오래된 통찰이다. 어떤 사건의 진짜 의미는 앞으로 펼쳐질 연쇄적 맥락 속에서,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드러난다. 그때는 분명 불행이라 믿었던 일이 몇 년 후에는 가장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고,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고 보니 오히려 나를 엉뚱하게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좋아"라는 말을, 나는 이제 현실 부정으로 읽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복잡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한낱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다.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씬(scene)이 내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의미가 될지 알지 못한다. 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착각이며 오만이다.
걱정은, 이야기가 채 쓰이기도 전에 결말을 단정 짓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은 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장면과 그다음 장면, 또 그다음 장면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얽혀드는 긴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의미는, 이야기가 충분히 흐른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 밤에도 나는 무언가를 걱정할 것이다. 인간이니까. 다만 이제는 그 걱정에 한 문장을 덧붙여보려 한다.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모른다는 그 사실이, 내게는 가장 든든한 위로가 된다.
출처:
LaFreniere, L. S., & Newman, M. G. (2020). Exposing worry’s deceit: Percentage of untrue worries in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treatment. Behavior Therapy, 51(3), 413-423.
Gleick, J. (2008). Chaos: Making a new science. Penguin.
*이번 글부터는 문체를 평어체로 바꿔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온도를 더 가깝게 전하고 싶어서요.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존대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