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또다시 사랑을 선택할까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이유

by 생각이 과함

"이제 진짜 아무도 안 만날 거야."

이별 후 친구가 제게 한 말입니다.

상처받는 게 두렵다고 몇 날 며칠을 울며 토로하던 그 친구는

몇 달 뒤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들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다시 사랑을 시작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본능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와 리어리는

인간에게는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근본적인 동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건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심리적 필요라는 것이죠.

이 욕구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한 관계조차 쉽게 끊지 못하고,

때로는 상처받는 쪽을 선택하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사랑은 선택이기 이전에,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본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립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에서요.

실제로 연구들은 양육자의 무조건적 사랑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자아 형성에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며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 아이는

세상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성인 간의 관계로 그대로 옮겨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연인 관계에서의 무조건적 사랑은

상대의 모든 행동을 참고 견디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짓말이나 배신, 폭력까지 용인하는 사랑은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임상심리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까지 용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요.

그래서 학자들은 성인 관계에서의 무조건적 사랑을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합니다.

이는 상대의 가치를 조건 없이 존중하되,

동시에 스스로를 지키는 경계 역시 분명히 하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흥미롭게도 사랑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성숙함보다 '이상화'가 먼저 작동합니다.

우리는 연인의 단점을 축소하고 장점을 과대평가하며,

행동의 의미를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합니다.

심리학 연구들은 이러한 긍정적 환상이

오히려 관계 만족도와 헌신을 높인다고 보고합니다.

어느 정도의 '사랑의 콩깍지'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 이상화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점은 드러나고,

그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리사 네프와 벤저민 카니의 연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들은 신혼부부들을 장기간 추적하며

배우자에 대한 전반적인 애정과 구체적인 이해를 함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배우자의 단점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던 부부일수록

갈등 상황에서 더 지지적인 행동을 보였고,

장기적으로 관계도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환상 위에 빚어낸 사랑보다,

진실을 마주하고도 포용해 낸 사랑이 더 강력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끝없이 사랑을 추구하는 이유는,

사랑이 인간에게 너무나 깊이 뿌리내린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집착이나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상처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선택하고,

환상을 내려놓은 뒤에도 상대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

그 복합적인 노력 속에서 사랑은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사랑이 중독처럼 시작된다면,

지속되는 사랑은 자발적인 선택과 연민의 연속 위에서 완성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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