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준비기 01

by 욘욘

석사 마지막 학기,

이 길을 더 가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던 학교 캠퍼스가 숨 막히는 장소가 되었고,

배우고, 닯고 싶던 교수님이 이제는 너무 힘든 사람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이 길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함께하고 싶다는, 무모한 포부로 마음이 가득차곤 했지만,

결국 남은건 학위논문 한권이었다. 허무했다.


그리고, 돈을 벌고 싶었다.

수입 없는 삶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석사학위를 겨우 받고 난 후,

나는 카페 알바를 시작했다.

2년 동안 '좋은 말'로 가득찬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온갖 생각으로 가득찼던 머리를 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바쁘디 바쁜 카페에서 주3일 일을 시작했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사람도, 커피도 좋았다.


6개월 정도 행복하게 일을 했다.

일을 해보니, 이 일은 소중한 경험이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을 더 벌고 싶기도 했고, 일을 안 하는 시간이 조금 심심하기도 했다.


영어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나는 교육학을 공부했고, 중학생 영어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고, 전임강사 자리니 아주 완벽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아주 잘했다.


하다보니 내가 정말 관심 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학원 강사라면, 보통 잘 하는 학생들에게 노력을 더 쏟는다.

잘 하는 학생이 보통 더 열심히 하고, 이들에게 투자를 하면, 어느정도 성과가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나는 못 하는 아이들에게 눈이 갔다.

왜 틀리는지 알려주고 싶었고, 성적이 오르는 느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참 좋은 점이 많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러한 아이들의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걸 어려워 한다.

한두번은 선생님의 관심이 좋은 마음에 따라오지만, 꾸준하게 지속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성적은 당연히 오르지 않는다.


열심히 할 마음이 생기는 건 노력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한명 한명 잡고 기분을 맞춰주면서, 적당히 같이 놀면서 가르치면, 금방 따라올 것 같은데 강사 개인이 그렇게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아이들은 관심을 좋아한다.

노력을 하던 안하던 아이들은 높은 성적을 좋아한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따듯한 관심은 보통 잘 하는 아이를 향한다.

못 하는 아이, 안 하는 아이는 보통 차가운 관심, 그래서 관심인지 간섭인지 헷갈리는, 그런 관심을 받기 쉽다.


나도 한때 못 하는 아이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아이들이 더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단순히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냈다는 느낌을 받고, 나도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단순 개인 한명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서 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도 더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특히 취약한 환경의 아이들이 잘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해 공부하고,

그 결과가 이 아이들이 더 편안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환경을 만드는데에 일조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이 마음은 박사과정을 시작할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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