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지내기

혹한기 일상 기록

by 초록여유

자신만만하게 씩씩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12월 중순쯤일 것이다. 올겨울은 고생을 많이 하지 않고

지나가려나보다 생각해 버렸다. 웬걸? 크리스마스 때부터 추위는 점점 심해지더니

"내가 겨울이다. ", "겨울 맛 좀 봐라"

그래도'설마 얼어 죽겠어?' 라며 호기로웠다. 단단히 중무장해 가며 외출을 했다. 이런 추위 속을 다녀봐야 더운 여름의 소중함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겨울의 낭만 리스트를 행동으로 옮겼다. 우선 동지 팥죽을

뭉근히 끓여서 먹었다. 두 번이나 끓였다. 두 번째 할 때는 새알심을 넣고 제대로 끓여도 보았다. 동김치랑

같이 먹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나이만큼 새알심을 세어서 먹어야 한다'말도 다시금 기억이 되었다.

다음에는 현금을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붕어빵을 사 먹는 것에 집중했다. 따끈한 붕어빵을 호호 불면서

바사삭 베어 물고 겨울을 배회했다. 뜨끈한 국물을 끓였다. 감자탕, 매생이 굴국, 소고기 뭇국, 김치 콩나물국,

전복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에 이르기까지 속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폈다. 외출 후에 돌아오면 따뜻한 차로

몸을 데울 수밖에 없는 맹추위가 점점 맹위를 떨쳤다. 가스비가 인상되어서 남편은 자꾸만 온도는 낮추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을 쓰지 않았다. 추위보다 남편의 아끼는 습관 앞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생협에 가서 여성용 녹용을 사 와서 아침저녁으로 먹었다. 한 달 반을 복용했다. 덕분에 잠은 잘 잤다.

추위도 처음에는 삼한 사온의 규칙을 나름 지키는 듯하더니 기온은 가속화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전

문자는 '강추위에 빙판길 조심하라'는 문구는 보름 동안 계속 이어졌다. 붕어빵도 점점 지겨워졌다. 순댓국을 사 먹어도 왠지 힘이 나지 않았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는 순간 통증이 느껴졌다. 살면서 차가운 물에 통증을 느낀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마다 물을 데워서 썼다. 개수대가 막혔던 적이 있어서 뜨거운

물로 마지막을 정리했다. 아침에 남편 밥을 챙겨주기 위해 일어나면 외출할 때 쓰는 목도리를 먼저 두르고

베란다를 오가며 10분 만에 후다닥 국물은 맨 나중에 떠서 식탁에 놓았다. 외출을 하고 집에 오면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서 그런지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담요를 덮고 있으면 마취된 것처럼 눈꺼풀이 내려왔다. 잠깐 낮잠을 취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일주일 내내 강추위가 지속되니 손발의 차가움이 오래 지속이 되었다. 저녁에 식구 세 명이 모였을 때는 난방을 좀 가동했다. 이렇게 방바닥이 따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온수 쪽에 수도꼭지를 두지 않았다. 차가운 물에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집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잠을 잘 때는 손을 엉덩이에 넣어서 녹였다. 이불을 덮지 않은 코는 차가워서 금방 숙면에 들지 못했다.

생도라지를 까서 볶아도 먹고 무쳐도 먹고 했다. 우엉이 싱싱하게 나와서 우엉 김치도 하고 우엉조림도 해서

먹었다. 12월에 봄동이 나왔어도 사 오질 않다가 1월에는 푸릇한 것을 먹으면 생기가 더 나올 듯해서 봉지로 샀다. 봄동으로 삶아서 나물도 해서 먹고, 된장국도 끓여서 먹고 겉절이도 해서 밥을 비벼서 먹었다. 오직 추위를 이겨내겠다는 생존에 집중을 했다.

1월 말이 되니 해가 쥐꼬리만큼 길어졌다고 칠십 네 살 영옥 언니는 시절을 읽었다. 요가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 저녁 6시니까 '무서운 변화' 서서히 밝아오는 낯의 길이를 눈으로 몸으로 읽었다. 눈길에 미끄럼방지 아이젠을 딸이 사주었다고 자랑했다. 올해는 그래도 많은 눈이 오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다니기에는 좋았다. 두툼한 목도리에 장갑, 마스크로 중무장을 해서 나가도 체온을 올리기 위해 냅다 뛰었다.

운동을 하고 와서도 도저히 집에서 샤워를 할 엄두가 나질 않아서 사우나를 갔다. 어제는 딸도 같이 가자고 해서 오랜만에 동행을 했다. 개운하게 씻으니 기분은 훨씬 환해졌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강추위가 맹추위를 데리고 와서 널 퍼지고 깔깔대고 조롱을

하고 있었다. "내가 겨울이다 어디서 겁 없이! " "예예 알겠습니다. 몰라봤네요?"

성우 송도순, 배우 이순재, 영화배우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게 이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방송에서 친근하게 나오던 사람들의 영면은 이제는 나에게도 생길 수 있구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숙연해지고 차분해졌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자 했던 내일이다 - 세네카-

맹추위와 배우들의 죽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해서 더 싸늘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가를 열심히 다니고, 밥을 잘 챙겨서 먹고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려고 여러 가지를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이런 추위에 적응을 해버렸다. 주말에 몸살을 심하게 앓고 나니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저녁마다 감사 일기를 쓰고, 좋은 글귀를 필사를 하고 다시 낭독을 하고 독서 토론을 위해 두꺼운 명작을 읽고 오롯이 지금에 집중을 했더니 몸이 가벼워지고 따뜻해졌다. 베란다의 천리향에 보라색 꽃몽우리가 졌다. 반가웠다. 내가 대견해졌다. 슬슬 어디를 나가 볼까? 어제가 입춘이었다. 시절을 속일 수가 없다. 겨울은 나이를 먹게 하고 늙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청소력과 독서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