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업고 엄마가 친정에 가면 외삼촌은 엄마에게 차라리 메주를 업고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
내 얼굴이 네모난 얼굴형도 아니고 피부가 누런색도 아닌데 메주라니. 시골 외할머니 집에 가면 꼬은 볏짚에 묶여 천장에 매달려 꿉꿉한 냄새를 풍기는 메주가 나라니.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마다 어른이건 아이건 돌아가면서 흑역사를 끄집어낼 때도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또 나오는 메주 얘기.
벽돌보다 큰 메주가 머리 위에 매달려있는 것도 보기 싫었다.
조카를 메주라 부르던 나를 아빠는 항상 '우리 1등 딸'이라며 예뻐해 주셨는데 딸 바보 같은 아빠가 부러웠는지, 아님 시샘이라도 했던 건지 외삼촌의 마음은 둥글둥글하지 못했다.
그 후에 외삼촌도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그 애는 나보다 더한 메주였다.
나의 부모님은 통쾌하다는 듯, 외삼촌의 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웃어대셨다. 그럼, 나도 기분이 왠지 좋았다. 그 후로 외삼촌은 나를 메주라고 부르지 않았다.
메주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나의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어린애가 차분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말썽도 부리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나를 이번엔 애늙은이라고 불렀다.
메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자 애늙은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열 살 남짓 된 아이에게 애늙은이라는 어른들의 표현이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애지만 어른 같다며 붙여준 것이다. 속내를 꼭 드러내야만 아이다운 걸까? 그럴 필요가 없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난 그저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바가지 머리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다른 애들보다 유난히 많고 말수가 적은 평범한 아이인데 말이다. 아, 눈두덩이 살이 두툼해서 늘 반만 뜬 것 같은 눈까지 포함해서.
어쩌면 외삼촌의 사람 보는 눈이 아주 삐뚤어진 것만도 아니었다. 점점 자라는 동안 나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문제점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건 나의 '눈'이었다. 두툼한 눈두덩에 반쯤 감긴듯한 눈은 생각에 잠긴 건지, 잠에 잠긴 건지 늘 반반 섞인 반달눈이었다.
게다가 웃기라도 하면 부처님과 모나리자를 또 반반 닮은 어린아이의 표정에서 어른들이 애늙은이라고 부르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꼬리표 또한 맘에 들지 않았다.
'눈이 좀 더 크면 어떨까?' 이쑤시개에 풀을 묻혀 두툼한 눈두덩이 위에 길게 그었다가 눈을 치켜 떠보았다. 두 겹의 살이 붙어 속눈썹까지 들어 올리니 감춰져 있던 동그란 눈망울이 보름달처럼 빛나 보였다. '나도 쌍꺼풀 수술해 볼까?'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예뻐질 수 있을 거 같은 상상을 했다.
'이거 왕자님들이 줄을 서겠는데?' 공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그때부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고 매일 눈에 풀칠을 해대며 다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부모님은, 사람은 마음이 고와야지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마음씨 고운 아가씨의 인생역전은 전래동화에서나 벌어지는 전통 고적극이었다.
매년 누가 누가 제일 이쁜지 뽑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봐도 마음씨 고운 언니가 진인지, 선인지, 미인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미스코리아 진선미는 진짜 이쁜 언니들이었다. 얼굴이 예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있어도 마음씨 고운 선발대회는 본 적이 없었다. 아,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는 마음씨가 고우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들을 TV에서 보기는 했지만 내가 찾는 얼굴형을 가진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나도 내 나이 다운 모습을 갖고 싶었다. 내 인생의 운명을 '눈'에 걸기로 결심했다.
외숙모는 취업을 앞둔 나의 얼굴이 남일 같지 않았는지 고3이 되는 겨울방학에 시골로 내려오라면서 잘 아는 미용실로 나를 데려가 내 얼굴에 있는 점과 주근깨를 빼주셨다. 아차, 나의 별명 중엔 깨순이도 있었다. 그 점과 깨들은 자그마치 80개도 넘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연신 놀라운 듯 열심히 뺐고 외숙모가 돈을 많이 써주셨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월급과 보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쌍꺼풀 수술을 했다.
내가 수술을 하기로 예약까지 할 동안 부모님은 신기하게도 나를 말리지 않으셨다. 마음씨도 착한데 얼굴까지 예뻐지면 금상첨화라고 생각을 바꾸신 건가? 가족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만류하지 않았다.
수술 후 부기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얼굴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뻐졌다더라'는 소문은 친가, 외가에 금방 퍼졌고 그 소문을 확인하려는 듯 시골에 내려가면 친척들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디서 했냐, 절개 식이냐 매몰 식이냐, 어느 병원에서 했냐...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나를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야, 너 정말 예뻐졌구나!" 친척들의 반응을 보니 외삼촌만 나를 메주로 본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중 가장 특급 칭찬은, "개천에서 용 났네, 용 났어!"
이제 또 새로운 꼬리표가 붙었지만 제일 맘에 드는 '개천표 용' 꼬리표였다.
새로운 꼬리표를 달고 용처럼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자, 이제부터 슬슬 왕자들에게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며 거울 속의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이쁘지?' 거울이 대답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란다. 무죄라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속마음과 다른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었다.
콤플렉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변하고 싶었다. 보이는 외모든지 보이지 않는 마음이든지.
나의 겉모습이 달라지자 속마음에도 보름달이 떠올랐다. 둥글둥글한 달처럼 내 마음도 둥그스레 밝아졌다.
메주도, 애늙은이도 아닌, 20대 꽃다운 나이답게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는 옷을 입어도 보이는 쪽을 겉으로 드러내어 입는다. 박음질이 되어있는 안쪽을 맨살에 닿게 입는다. 반대가 되어야 맞는 것 아닌가?
우리가 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다. 내면의 모습은 각자가 본인에게 맞게 가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