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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소리 Oct 15. 2024

아빠의 고희연 기념 수건

세탁 후 다 마른 수건들을 정리하는데 하얀 수건에 인쇄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김성환 선생 고희연 2011.11.26.' 


아빠가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칠순잔치를 하며 기념품으로 수건을 만들었었다.


그때는 이런 잔칫날에 수건을 손님들에게 돌리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수건이 선물용 포장 박스에 담겨있을 때처럼 뽀얗게 그대로이다.  


수건을 늘 삶아 세탁해서인가보다.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는 것은 바쁜 일상의 시간에 점점 밀려나고 있다.


매년 드리던 가족 추도 예배도 오빠가 엄마를 모시고 추모관에 다녀오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나도 매년 봄에 엄마와 함께 추모관에 가는데 1년에 한 번 간다.


아마 이 날이 아빠를 가장 오래 떠올리는 날인 거 같다.  



돌아가셨어도 아빠의 생신날에 엄마에게 전화를 해오는 친척분이 계셨는데 이젠 그 전화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금기어도 아닌데 아빠에 대한 추억이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시간도 자리도 없어지는 듯했다.


가끔.

아주 가끔 꿈속에서 아빠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돌아가셨을 때의 모습이 아닌 아빠가 한 창 일하시던 40대 모습으로 나오셨다.


내게 아빠는 늘 성실하고 그래서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며 일하시던 분이셔서 그랬는지 일상의 출근하는 모습으로 나오셨다.


아빠가 직장을 옮기고 신축 공사 현장의 감독으로 일하시다 발을 헛디뎌 2층 높이에서 떨어지셨다. 그리고 목을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되셨다.



회생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게 되었고 그런 일상 속에 아빠의 고희연을 할지 말 지 가족들의 회의 끝에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 싶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그동안 못 보고 지냈던 지인들을 만나고 아빠도 연신 웃으시며 잔칫날답게 기쁘고 보기 좋게 고희연을 치렀다.


엄마집 벽에 걸린 큰 사진 속의 아빠와 그때의 우리들을 보며 그날이 떠오르지만 잠시 보고 지나치게 된다.


내 휴대폰 속에는 병원에 입원하신 아빠의 모습과 심하게 악화되어가고 있던 환부의 모습을 찍어둔 사진이 있다.


노총각이었던 장손 아들의 결혼 준비에 바쁘셨던 엄마는 아빠의 욕창 부위의 염증을 살필 겨를이 없으셨다.



그 지경이 되도록 아빠를 살피지 못했던 우리들의 잘못을 상기하기 위해서 사진을 계속 가지고 있다.


아들의 결혼을 1주일 앞두고 입원을 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우리의 잘못이 컸다.


하늘나라로 가셨을 거라고 모두의 신념대로 믿고 있지만 아빠는 정말 하늘나라로 가셨을까?


혼자서 휠체어를 미시며 하늘나라 가는 길이 힘드시지 않았을까?


전동휠체어가 아닌 손으로 밀어야 하는 수동휠체어였는데...



우리 누구도 아빠를 그곳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엄마는 추모관에 있는 아빠의 사진 앞에서 빨리 자기도 데려가라고 부탁을 하신다.


아빠에게 하셨던 그 많은 잔소리 중 가장 진심인 말로 들렸다.



엄마가 사시는 오래된 집을 수리를 하고 얼마 후 엄마의 꿈에 아빠가 두 다리로 걸어 집으로 오셨다고 했다.


아빠도 맘에 드셨는지 웃으시며 나타나셨는데 엄마의 꿈속에 나타나신 아빠의 안부를 대신 전해 듣는 거 같았다.  


하늘나라에 잘 찾아가셨는지 휠체어도 이젠 필요 없어졌나 보다.


아빠의 고희연 기념 수건을 보며 잠시 아빠를 생각하고 추억해 보았다.



아빠의 이름은 가명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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