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자 Oct 10. 2024

마음 이사청소

일거리가 없을수록 행복한 업체

 "안녕하세요, 청소업체입니다."

 휴대폰을 들고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말했듯, 나는 청소업을 하고 있다. 입주청소와 이사청소가 메인이다. 


 처음 청소업을 배울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먼저, 신축 새집청소하는 입주청소를 배웠다. 새집은 깨끗한 알았는데 공사로 인한 분진가루와 백시멘트 가루 같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말이 새집이지 새것이 전혀 아니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집을 청소하는데 필요한 장비도 굉장히 많았다. 그렇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다음날은 세입자가 이사를 나간 후 청소를 들어가는 이사청소를 배우러 갔다. 이사청소는 이전 세입자가 사는 동안 남긴 흔적들을 지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 생활용품들이 빠져나가고 빈 집이 되면 그 속에서 몰래 자라고 있던 오염들이 보인다. 어떤 녀석들은 긁어내고 약품을 쓰고 수세미질을 해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너무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탓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과 이별할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이 우리 마음에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사라지면 흔적은 아무리 긁어내고 약품을 써대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내가 청소를 하며 늘 생각했던 것은 이처럼 사람의 이야기였다.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어서 그런 걸까?

 이전 세입자가 적은 기간 살다 나갔다면 그만큼 지울 흔적의 농도는 옅다. 하지만 오랜 기간 살다 나갔다면 지울 흔적의 농도는 매우 짙다. 작업 시간의 차이도 많이 난다. 우리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이별을 겪을 때, 그리 짙은 농도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잠깐 아쉽고 끝나지만 깊은 농도의 인연이었다면 어떻겠는가? 지금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워야 지워지겠는가.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당신의 마음을 이사청소 맡겨야 할 날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마음은 현실과 달라서 이사를 계획할 수도 없다. 계획 없이 오는 이사를 하고 싶지 않다면 상대에게 지금 이 집이 가장 좋은 집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요컨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라는 말이다. 기억하라.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는 사실을.

 어느 날은 14평의 집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3명이서 청소한 적이 있다. 이 집이 사람의 마음이었다면 분명 긴 사랑을 했으리라.


 어디선가 농도가 옅은 이별이 어디 있냐, 이별은 다 슬프다!라고 따지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당연히 이별은 다 슬프지만 농도가 옅을 수는 있다. 이에 잠시 내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내 친구는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전화로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하길래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친구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발끈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카페도 같이 가고 연락도 자주 주고받는 것 같더니, 어느 날 친구에게서 시간이 되냐고 연락이 왔다. 별다를 거 없이 같이 이야기하고 등산도 갔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친구가 입을 열었다.

 "교회 오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하는 친구를 쳐다봤다. 왠지 알 것 같았다.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이어졌고 그 여자의 이야기가 맞았다. 교회 오빠의 차를 타고 놀러 간다는 연락을 끝으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는 왠지 우울해 보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속에 그녀를 들였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친구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 생각 안 나냐?"

 "응, 혼자 시간 보내니까 금방 잊었어."

 농도가 옅은 이별이었다. 이별이라고 해서 꼭 서로가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 친구는 분명 이별을 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던 그녀는 흔적도 아주 조금만 남겼다. 농도가 옅은 오염을 지우듯, 농도가 옅은 흔적을 지우는 것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같이 얘기하고 놀다 보니 금방 잊히네."

 내가 말했다.

 "내가 청소 전문인데, 마음의 청소도 식은 죽 먹기지. 언제든 맡기라고."


 다음 사업은 이별한 마음을 청소해 주는 마음 이사청소를 해볼까? 그렇다면 일거리가 없어야 되겠다. 일거리가 없을수록 이별한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니까. 다들 행복하다는 말이니까.

이전 09화 투자와 매매, 그 끝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