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
약 4년 전부터 주식에 관심을 들였다. 오래전부터 투자와 매매를 해 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버지의 30년 지식과 경험을 그 어떤 대가 없이 배울 수 있었다. 그중에서 아버지가 가장 강조한 것은 차트를 보는 기술도 아니고 기업을 잘 찾는 기술도 아닌 욕심을 버리는 기술이었다.
주식으로는 재무제표를 보고 당시 나의 기준에 맞는 기업을 찾아 투자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한동안은 손대는 곳마다 모두 이익을 봤다. 그러나 코로나를 지나치며 꽤 많은 주식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내가 보유한 주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벌었던 것이 있어 큰 손해는 없었지만 나는 주식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주식에 흥미를 잃은 이유는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게임이든 운동이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주식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었고 그 말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비트코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이름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체를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암호화폐는 비트코인만이 아닌 여러 코인이 존재했고, 내 생각보다 시장이 아주 크고 참여자가 많았다. 무엇보다 장이 24시간 열려있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동안 활성화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했다.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던 아버지는 이미 비트코인의 매매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달라고 아버지께 다시 한번 부탁하게 된다.
차트의 움직임이 주식이나 다를 게 없었다. 어차피 사람들의 심리로 움직이는 것은 주식이나 암호화폐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내게 알려주며 신신당부했던 것은 절대 욕심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차트를 그렇게 잘 보면서 왜 이렇게 조금씩 매매하세요?"
차트를 30년간 봐 온 아버지께 물었다.
"9번을 맞히다가 1번을 틀리면 모두 잃는 게 이 바닥이다.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과감히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끝까지 희망만을 바라보다가 죽는 게 이 바닥이다. 절대 욕심부리지 마라. 틀렸을 때도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돈으로만 매매해라."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는 내게 투자나 매매, 주식과 비트코인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힘든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병을 얻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 기술을 몸에 완벽히 익혀두기만 하면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할 때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내게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매매를 통해 크게 쓰러지는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야만 돈을 잃는 법을 배운다고. 그래야만 돈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운다고.
아버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왕좌를 차지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날부터 차트를 배우고 경제를 배우고 철학을 배웠다. 차트를 배워 기술을 터득하고 경제를 배워 흐름을 볼 줄 알고 철학을 배워 심신을 단련해야 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대로 안전하게 매매를 했다. 내 돈이 죽을 일이 없었다. 그렇게 안전한 매매로 1년 후 2배라는 수익을 보고 난 후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1년 간 벌었던 수익을 출금해라."
수익을 출금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출금하라니요? 이 돈으로 계속 매매를 하면 내년엔 이 돈의 2배가 되어있을 텐데요."
아버지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욕심부리지 마라. 지금이 실수하기 딱 좋은 시기다."
나는 출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은 터졌다.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차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진 현금까지 추가해서 계속 매매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돈이 들어왔다.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어리석음을 시장은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곧바로 나를 응징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9번을 맞히다가 1번을 틀려 벌었던 돈을 다 잃었다.
말하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자신했던가?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줄 안다고 자신했던 나는 그 기회가 위기임을 알지 못했다. 내가 당했던 날, 아버지는 여전히 잔잔한 물결처럼 차트에 몸을 맡기고 계셨다.
한 번의 쓰러짐 이후, 두 차례의 쓰러짐이 더 있었다. 쓰러지는 이유는 역시나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쓰러짐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욕심을 부렸다기보다는 나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큰 쓰러짐과 작은 쓰러짐 속에서 배우고 몸소 깨달은 것들을 매매원칙으로 만들어 나만의 룰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너무 성급했던 나는 원칙을 어기는 일이 잦아졌고, 결국 크게 쓰러졌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기뻐했다. 드디어 진짜 트레이더가 되었다고 했다. 세 번의 쓰러짐을 겪고 그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면, 즉 총 세 번의 깨달음을 얻는다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세 번째 쓰러짐에서 내 돈을 모두 잃었고 이제야 깨닫게 된다.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모두 정답이었어.'
욕심부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방법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세상에 없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빠른 방법은 가장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빨리 가려다가는 넘어지거나 사고가 나 오히려 더 늦게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하고 싶은 의미는, 욕심을 버리기 바란다.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지금이 위기인지 기회인지 알 수 없게 만들며 나만이 아닌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만든다. 욕심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만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러나 그 마음 때문에 결국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세 번째의 쓰러짐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세 번째의 쓰러짐 후 끊임없이 내가 쓰러진 곳을 맴돌았다. 내 원칙을 지켰더라면, 지금까지 만들어 온 방법들을 잘 섞어서 안전한 매매를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날 내가 본 건 나의 투자, 매매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그런 큰 폭의 하락조차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원초적인 이유는 아버지의 말과 같았다. 나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눈이 멀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그날부터 끝났다. 돈을 벌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지만 돈을 잃으며 아버지께 인정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돈을 버는 방법을 먼저 아는 것보다 돈을 잃는 방법을 먼저 아는 것이 내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먼저 깨우치기 바라셨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일정 금액 이상을 매매 계좌에 넣지 않는다. 매매 시간도 줄였다.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번 돈의 일부를 출금한다. 주변에서 내게 투자나 매매에 관해 묻는다면 이 다섯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게 대답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나의 과거와 똑같이 행동했다.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욕심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빨리 가는 길이 가장 느리게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