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밭일은 안 하고
몸이 아픈 후로, 좋은 식재료를 위해 직접 친환경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농약, 제초제, 살충제, 화학비료 등 화학적이고 인위적인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연에게 맡기는 농사를 했다. 농사꾼은 일을 하지 않는다. 작은 생명체들이 대신 일해주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대한 것은 나중에 따로 써 볼 생각이 있으니 그때도 함께 해준다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친절히 알려주겠다.
집 앞 마당의 밭에 나가있기를 좋아한다. 그곳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고 많은 생명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제초제 등 화학적인 것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밭이기 때문에 많은 생명체가 산다. 제일 반가운 건 사마귀다. 사마귀가 반가운 이유는 어릴 적 추억 때문이다. 곤충의 왕이라는 타이틀과 차별화된 생김새는 어린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고, 여름만 되면 사마귀를 잡으러 다닌 기억이 있다.
밭에 나가서 오늘은 무슨 생명체가 보이려나 둘러보는 도중 사마귀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사마귀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날은 왠지 사마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릴 적 직접 키우며 수도 없이 본 장면이지만 자연에서의 모습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장 없이 5시간은 넘게 기다렸지만 사냥 장면을 볼 수는 없었다. 사냥감을 직접 찾아다니는 사냥법이 아니라 사냥감이 다가올 때 낚아채는 사냥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시간을 앉아 바라보다가 사마귀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마치 인생을 통달한 노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 사마귀는 아는 것이다. 자신의 몸 구조는 직접 움직여 사냥하는 것보다 가만히 기다리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낚아채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사마귀는 여치처럼 강하고 빠른 점프를 할 수 있는 뒷다리가 없으며 거미처럼 넓은 범위의 덫을 놓을 수도 없다. 달리거나 걷는 속도가 빠르지도 않고 비행도 오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단점에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사마귀는 사냥 속도와 정확도를 꾸준히 진화시켰는데, 사냥속도는 0.25초 정도로 우리가 눈을 깜빡이는 시간과 비슷하다. 그 외에 거리를 재는 능력, 주변 환경과 비슷한 위장색의 몸, 뾰족한 가시가 잔뜩 있는 낫처럼 생긴 앞다리, 머리를 돌려 여러 각도로 주변을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까지 가지고 있다. 주변에 오는 사냥감을 빠르게 알아채고 한 번 잡은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쪽으로 노선을 튼 것이다.
우리는 사마귀를 보고 배워야 한다. 다들 자신의 장점만 내세우기 바쁘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단점에도 집중해 보자. 내 경우엔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단점이었다. 그걸 강점으로 바꿨던 것은 사색하는 법을 깨우치고나서부터였다. 너무 많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한적한 공원이나 주차장의 차 안에서 생각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나니 이제는 아무리 많은 생각이 머리를 지배해도 한순간에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게 어디서 강점으로 쓰일까?
많은 생각을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게 되자 갈등과 대립이 줄어들었다. 상대가 내게 말을 할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의 의도와 나의 여러 가지 대답들을 떠올린다. 그것들을 정리해서 가장 적합한, 내 입장을 보이면서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을 말을 입으로 내뱉는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단점이었던 나는 그 단점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인간관계에서의 강점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칠 때도 비교적 상황 판단이 빠른 편이다. 일상 속에서 생각 정리를 습관화하다 보니 상황 판단도 빠르게 이루어진다.
사마귀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노선을 틀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노선을 틀어 자신만의 방법, 나만의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분명 내게 더 잘 맞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기 위해서는 장점만이 아닌 단점도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그 단점을 본인의 강점으로 바꾸는 날, 당신은 왕의 타이틀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사냥감을 쫓아가지도, 천적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는 사마귀가 곤충의 왕이 된 것처럼 말이다. 여러분이 장점과 강점을 모두 가질 그날을 기다린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하라는 밭일은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