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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자 Oct 04. 2024

장갑차 조종수, 별을 보다.

내면의 별을 찾아서, 창백한 푸른 점을 생각하며

 입대를 하면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받는다. 그러나 보직을 따로 받은 이들은 그 보직에 대한 교육을 받기 위해 자대 배치 이전에 또 한 군데 더 들려야 한다. 우리는 그걸 후반기 교육이라고 불렀다.

 나는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장갑차 조종수라는 보직을 받게 되었다. 전차 조종 시뮬레이션과 공구의 이름을 맞히는 등의 테스트를 거쳐 받게 된 것이다. 보직을 받았기 때문에 나 또한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다.

 훈련소의 수료를 끝내고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왔다.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다들 용기 있게 서로의 길로 향했다. 나는 전라남도 장성의 상무대로 향했다.


 앞으로 3주간 지낼 생활관에 도착했다. 훈련소에 처음 입소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로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담당 조교와 교관이 들어와 간단한 소개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그날은 마무리되었다.

 교육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이론 교육과 실습 교육을 받으면서 장갑차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고 있었다. 장갑차의 구조부터 시작해서 점검을 하는 법, 정비를 하는 법, 계기판을 다루는 법 등 며칠간 조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익혔다.

 처음엔 어떻게 이 거대한 걸 조종하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조종수석에 앉아있었다. 처음으로 이 거대한 물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교육생들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니, 간단하다고 느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장갑차를 모는 군인을 보면 분명 신기하고 대단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종수석에 앉기 위한 기초 과정들을 모두 배워왔다. 배운 대로 움직이고 이해한 대로만 조종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는 건 당연하다. 만약 여러분들이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너무 커서 압도되거나 시작할 엄두도 못 내겠다면 그 분야의 가장 기초 지식부터 쌓으면 된다. 기초 지식을 쌓다 보면 다음 단계가 보이고, 그렇게 단계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압도될 만큼 컸던 목표는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배워가다 결국엔 거대한 장갑차를 몰게 된 우리처럼 말이다. 특히 요즘은 지식을 쌓기 좋은 세상이 아닌가.


 교육 마지막 주가 되면 군용 장갑차 면허증을 받으며 후반기 교육을 마무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은 야간 조종이었다. 별이 뜬 어두운 밤에 장갑차 조종 실습을 했다. 교육의 거의 마지막 단계였다. 심지어 승무원실에 동기들을 태우고 조종을 했다. 그 말인즉슨, 동기가 조종을 할 때는 내가 승무원실에 타고 있다는 말이다. 교관은 우리에게 낭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밤하늘이 보이도록 승무원실의 해치를 열고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과격한 장갑차의 움직임 속에서 동기들과 바라본 밤하늘의 수많은 별은 낭만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저 별에서 우리 쪽을 바라본다면 지구가 어떻게 보일까? 보이긴 할까?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왠지 무거웠던 짐들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실제로 1990년 2월 14일,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오랜 제안 끝에 보이저 1호가 카메라의 방향을 돌려 지구의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다. 내가 했던 생각을 이미 오래전 누군가가 했고, 실행까지 한 것이었다. 아래의 사진이 약 60억 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창백한 푸른 점이다.

창백한 푸른 점

 표시가 없으면 저게 지구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크기의 점이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넓은 땅을, 엄청나게 높다고 생각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지구 표면의 약 70%나 차지하는 광활한 바다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아주 작게 느껴졌다. 힘든 일이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작은 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혐오가 사라지고 분쟁이 싫어졌다. 저 작은 점은 우리가 사랑만 하기에도 좁은 공간이지 않은가?


 덜컹거리는 딱딱한 의자에서 동기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가슴 한 구석에서부터 몸 전체까지 빛이 퍼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작은 점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나는 여러분들이 때로는 숨을 고르며 쉬어가고, 때로는 뒤쳐진 친구를 일으켜주기를 바란다. 이해와 배려로 살아갔으면 한다. 우리는 이 작은 점에서 대체 무엇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싸우는 것인가?

 기억하라. 이 광활한 우주의 작은 점 속에 우리들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여기서부터는 제 글의 내용이 아닌, 칼 세이건이 위 사진을 보고 책 "창백한 푸른 점"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감명 깊은 내용이기에 관련 영상도 유튜브 링크로 걸어두겠습니다. 영상은 50초부터 시청하시면 됩니다. 보거나 읽은 적이 없는 분들은 한 번 보시는 걸 강력 추천합니다.

영상 :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youtube.com)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출처 : 창백한 푸른 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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