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 나를 변하게 해 준 사람, 너무 많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 지금 여러분이 떠올리고 있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 나이의 나는 다리 한쪽을 다친 아기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다친 고양이를 받게 되었다. 작은 생명체가 덜덜 떨며 겁을 먹은 모습이 안쓰러웠던 나는 그날부터 그 고양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름은 잭이었다. 암컷 고양이였는데 왜 잭이었을까? 그냥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동물병원은 따로 가지 않았지만 계속 키우다 보니 잭의 다리는 금방 나았다. 걷고 뛰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엄마는 잭을 위한 옷을 사기도 했었다. 처음 옷을 입어본 잭은 고장 난 기계처럼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지만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추운 겨울, 학교를 다녀오면 난로 옆에 앉아있던 잭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오고 내게 얼굴을 비비며 애정표현을 하던 모습도 잊지 못한다. 그때는 그런 단어를 몰랐지만 지금 와서 얘기하자면 개냥이가 따로 없었다. 새침하고 도도한 고양이의 일반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사람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은, 강아지의 성격을 닮은 고양이들을 개냥이라고 부른다.
잭의 애교 많은 성격은 정을 더 많이 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샀던 옷이 안 맞을 만큼 자랐을 때쯤, 문제가 생겼다. 중성화 수술에 관련된 문제였다. 나는 무언가 키우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 키우기에 대해 검색하던 중 중성화 수술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그때의 정보에 따르면 암컷 고양이는 발정기가 오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수컷을 부르는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며, 교배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는다고도 했다. 게다가 고양이는 완경기가 없기 때문에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이런 발정기를 계속 겪게 된다고 하니, 잭이 고통스러운 게 싫었던 나는 중성화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잭의 중성화 수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양이의 수명에도 연관이 있다는 말을 하며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자 부모님은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의 성격이었을까? 고양이에게 몹쓸 짓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은 돈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내게 가상의 아들이 물었다면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의 이유로 안된다고 했을 것 같다.
결국 중성화 수술에 대한 설득은 끝까지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는 잭을 마당에서 키우자고 한다. 나는 내보내기 싫었지만 어느 순간 잭의 집은 마당 한쪽에 자리 잡혀 있었다. 밤에 자다 깨면 잭을 보기 위해 마당을 나가기도 했다. 마당에 나가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야옹하며 다가와 안기던 잭의 온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추운 겨울, 마당에 쫓겨나면서도 내 탓을 하지 않고 내게 온기를 나눠주었다. 어릴 때의 경험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그 사람의 이상형이 정해진다고 했던가. 그때부터 난 어떤 상황에서든 내게 온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잭은 마당에서의 생활에 금방 적응을 하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났다.
학교에서 마친 후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잭을 만나러 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기척이 없다.
"잭!"
내가 부르면 늘 어딘가에서 나타나 애정표현을 하던 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당의 모든 곳과 옥상까지 다 찾아봤지만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잭이 없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말했다.
"어제 자는데 마당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그게 잭의 소리였나 보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고양이의 빠른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잭이 다른 고양이와 마주쳤던 걸까? 하지만 싸움의 흔적이 없었다. 혹시 수컷 고양이를 만난 걸까? 잭이 사라진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내 인생의 첫 이별이었다.
잭이 방에서 마당으로 나갔듯, 마당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간 거라고 믿고 있다. 아버지는 원래 고양이는 바깥세상이 더 행복한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잭은 어땠을까? 아늑한 방 안보다 자유로운 바깥을 더 좋아했을까? 그러고 보면 잭은 단 한 번도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 같다. 바깥세상으로 나간 후로는 다시 마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나의 욕심 때문에 잭의 자유를 막고 있던 것일까 생각했다. 다행이다. 중성화 수술까지 시켰었다면 잭은 바깥세상으로 나갈 일조차 없었을 테니까. 그녀는 자유를 얻지 못했을 테니까.
어쩌면 나는 작은 육아를 경험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의 길을 가로막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가 원하는 길만 보여주면 그 아이는 잭처럼 자유를 얻기 힘들지 않을까? 여러 가지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는 그 길 중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바깥세상으로 나갔던 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