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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자 Sep 29. 2024

제자를 아낀 선생님의 이야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선택은 어떻게 보면 꽤 중요한 선택이다. 내면의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학생들은 학교의 교육 수준과 환경에 따라 색깔이 바뀔 수도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교육 수준이 좋지 않거나 학생들의 태도가 나쁜 곳에 진학을 하면 성실했던 학생도 변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식물과 어두운 방 한구석 음지의 작은 화분에서 자란 식물의 질은 다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진학을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양지바른 곳과 음지의 작은 화분을 구분하는 방법은 내신 성적 커트라인이었다.

 고등학교마다 내신 성적 커트라인이 있었다. 어느 학교는 내신 90%까지 받는 곳이 있었고 어느 학교는 75%까지만 받았다. 높은 커트라인은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꽤 유명한 특성화고의 경우 가장 높은 과의 내신 커트라인이 50% 안쪽이었다. 과의 가장 마지막 등수의 내신이 50% 안쪽인 것이다.


 진학 상담이 이루어지던 시기, 나는 친한 친구들이 많이 가는 학교를 원했다. 그 학교의 내신 성적 커트라인은 8~90%였다. 그리고 나의 내신 성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0% 정도였다.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충분히 더 좋은 환경의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수치였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극구 말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내신이면 OO공고 제일 높은 과도 갈 수 있어."

 OO공고는 꽤 이름 있는 특성화고등학교다. 그 당시의 나는 잘 몰랐고 그냥 친구들이 좋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학교를 못 가는데요. 그냥 친구들이 가는 곳으로 가면 안 될까요?"

 내 말을 들은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아까워서 그래. 충분히 더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데 말이야."

 친구들이 가려고 하는 학교는 다른 의미로 유명한 학교였다.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둘이 입학하면 셋이서 나온다는 말도 있었다. 학교가 음지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큰 결정을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결정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해. 친구는 학교가 갈라진다고 못 보는 게 아니잖니."

 맞는 말이었다. 학교가 갈라진다고 친구들을 못 보는 건 아니다.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당연히 담임 선생님이 추천한 학교의 진학을 원했다. 내일까지 선택해야 했다.


 다음날, 다시 진학 상담을 갔다. 내가 선택한 학교를 말했고 선생님은 활짝 웃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 학교는 분위기도 좋고 교육환경도 다른 특성화고와는 비교도 안되니까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내가 친구들이 가는 학교가 아닌 OO공고를 선택한 이유는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주변의 설득에 휘말린 걸까? 뭐가 됐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기계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나는 거의 모든 기계를 다룰 있게 됐고, 취업의 문이 크게 열렸으며 어딜 가든 환영받는 자격증을 얻었다. 수많은 성실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로 인해 나도 성실하게 변했다. 얻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친구들이 진학했던 고등학교를 선택했어도 얻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 지금과는 크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선택했었는지 이유도 기억 안 나는 선택으로 인해 인생의 큰 부분이 결정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돋은 적도 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해 왔던 것들이 모두 내 인생을 안내하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내 인생은 내 무의식의 선택이 만들고 있는 것인가?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또 사색거리가 주어졌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선택에 따라 다른 길을 걷는다. OO공고의 진학을 선택한 나는 이런 길을 걸었고,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혹시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무슨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건 그 선택을 한 나만이 알 수 있겠지만 아마 그 길에서도 무언가 얻고 잃고 웃고 울었을 것이다. 어느 선택을 해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어야 하고 웃는 날이 있다면 우는 날도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니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했어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차피 다른 선택을 했어도 웃고 우는 건 똑같으니까 말이다.

 한때는 내게 OO공고를 추천해 줬던 선생님이 고마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분명, 그 다른 선택의 인생 속에서도 많은 것을 얻었을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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