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전자기계과를 선택하여 여러 가지 기계들을 다루며 공업에 대해 배워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재밌게 많은 시간을 연습한 건 용접이었다.
길을 다니다가 아이언맨처럼 헬멧을 쓰고 용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그게 멋있어 보였다. 헬멧을 쓴 사람의 손에서 밝은 빛과 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영웅 같았다.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 다른 실습에 비해 용접 실습은 항상 재밌었다. 여름엔 용접의 열과 가죽으로 된 보호장비로 인해 땀도 엄청 많이 나고 이곳저곳 화상과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영화 속의 영웅들도 싸움이 끝나면 그렇지 않은가.
용접을 하며 찾은 의미들이 있다. 용접을 모르는 사람도 알아듣기 쉽도록 전문적인 용어는 최대한 줄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일반적인 아크 용접을 할 때 전류의 강도를 조절해서 불꽃을 강하게 만들거나 약하게 만들 수 있다. 처음 용접을 할 땐 불꽃이 잘 튀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전류를 최대로 올려 실습을 했다. 그럼 불꽃이 굉장히 세져 살짝만 스쳐도 금방 불꽃이 튄다. 하지만 그만큼 열이 강하기에 조금만 작업을 해도 붙여야 하는 철이 녹아버려 용접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용접 부위를 모두 녹여버린 나는 이번엔 전류를 제일 낮춰서 해보기로 했다. 제일 낮춰서 하니 불꽃이 잘 붙지 않는다. 용접봉과 철이 붙어버리기도 하고 작업을 하기 어렵다. 지금부터 적당한 강도를 찾아야 한다. 재료마다 맞는 강도가 다 다르다. 맞는 전류 강도를 찾는 것이 용접의 시작이다.
높은 전류로 용접 부위를 녹여버리고 낮은 전류로 불꽃의 반응을 일으키기 힘든 상황을 겪으며 철과 용접봉의 관계를 느꼈다. 내가 생각한 것은 다른 것들도 비슷한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처음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때 너무 저돌적인, 높은 전류로 다가가면 상대는 부담감을 느끼고 숨어버리기 일쑤다. 그렇다고 아예 관심이 없는, 낮은 전류로 다가가면 상대는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재료마다 전류 강도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적당한 거리의 기준도 다르다.
식물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강한 빛을 받으면 타버리고 너무 빛이 없으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물을 너무 많이 머금으면 뿌리가 썩고 물을 머금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사람은 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체하고, 너무 먹지 않으면 영양실조를 겪는다.
감정도 그렇다. 우리는 종종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너무 기쁜 상태일 때는 위기를 모르고 너무 우울한 상태일 때는 기회를 모른다. 내가 더 예를 들지 않아도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공부를 많이 하거나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기울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용접의 재료에 따라 적절한 전류 강도가 달라지듯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중심"을 잘 유지해야 한다.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서의 중심은 서로 다르다. 결혼식장에서는 축하하는 분위기가 중심이며 장례식장에서는 위로하는 분위기가 중심이다. 그저 중심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해서 결혼식장에서든 장례식장에서든 무표정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분위기의 중심 속에서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분과 내가 그 중심을 1년 365일 어느 장소에서든 모두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과 하나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용접실의 좁은 공간, 헬멧 속에서 나는 세상을 봤다.
우리와 세상 사이의 적절한 전류 강도를 찾아 용접에 성공하여 세상과 하나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