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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자 Oct 03. 2024

떡집 알바

세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내가 궤양성 대장염에 걸리고 1년이 지난 추석이었다. 계속 우울했던 내가 일어서기 위해 가장 처음 한 일은 단기알바, 일일알바를 해보는 것이었다. 마침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고 추석 연휴 첫날에 떡집알바모집공고가 있었다. 추석 전날 떡집은 힘들다고들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연락을 했다. 하지만 방금 마감되었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나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다른 알바를 찾아보던 중, 다시 연락이 왔다.

 "앞서 연락하셨던 분이 갑자기 못 오신다고 하셔서 그런데 해보실래요?"

 나는 바로 하겠다고 했고 정확한 장소와 교통, 시간 등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당일날 오전에 알바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왠지 살짝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안 지나 바로 몸이 아팠던 나는 아주 오랜만에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바 당일이 되어 장소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어딘가 분주한 모습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멈춰두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다. 떡집엔 나를 포함하여 4명의 알바가 모였다.

 "어쩌면 예상 시간보다 일찍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비는 그대로니 걱정 마시고 지금부터 간단한 교육을 하겠습니다."

 떡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 명씩 직접 해봤다. 약 4가지의 일을 번갈아가면서 해보고 가장 잘 맞는 일을 배정해주겠다고 한다. 누군가는 송편의 모양을 잡는 일을 맡았다. 나는 송편 모양을 잡다가 터트려버리기도 했고 힘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찜기에서 떡이 완성되면 바깥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떡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참기름을 바르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등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처음엔 송편의 모양을 잡는 작업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전부터 몸이 편한 작업을 한 2명의 얼굴은 오후가 되자 폭삭 늙어있었다.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것이다. 나와 다른 한 명은 몸이 힘든 일을 했지만 시간은 빨리 가고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역시 뭐든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안 좋다.


 떡이 만들어지는 걸 보며 우리가 평소에 돈을 주고 사는 물건들에 이런 정성이 들어갔겠구나 생각했다. 보통 무언가 구매할 때 그 물건의 품질이나 가격만 생각하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제품만 보고 물건을 살지 말지 판단하는 것은 물론 현명하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품질만 좋게 나온다면 상관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잣대를 사람에게까지 들이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은 결과다라는 말이 어느 웹툰의 명대사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과정에 영양가가 없는 결과는 전혀 좋은 결과가 아니다.


 가령, 아무런 정보도 없이 주식에 돈을 넣었다가 대박이 났다고 해보자. 이 사람에게 그 주식을 산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그냥 누군가가 오른다고 해서, 또는 요즘 대세라길래 샀다고 할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지만 과정은 어떤가? 이런 사람은 나중에 또 같은 방법으로 투자를 했다가 쪽박을 차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때도 지금처럼 기업에 대한 조사나 차트에 대한 기술적 분석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이렇게 해서 망한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 하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결과만을 보고 잘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주식으로 돈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가? 많은 이들이 이 사람을 비난할 것이다. 그러게 왜 주식을 해서 멀쩡한 돈을 날렸냐, 한심하다, 바보냐 등의 반응으로 말이다. 이 사람의 과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생각해주지 않는다. 이 사람이 만약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기업을 조사하는 도중 놓친 게 있었다거나, 차트 분석에서 실수를 해서 돈을 잃었던 거라면 어떨까?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기록하고, 더 공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결과만을 보고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때의 이야기다. 여러분 본인의 삶에서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 그러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만큼은 결과보다 그 사람의 수많은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숨어있던 좋은 인연을 찾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른다. 꽃을 피울 준비 중인 사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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