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지지하는 정치 색깔이 달라서, 성별이 달라서, 세대가 달라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수많은 갈등으로 시끌벅적하다. 서로 싸우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신념으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어차피 우린 한 팀이다.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을 몸소 깨달은 것은 강제로 갇혀 조직생활을 해야만 했던 군대에서였다.
군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 말은 수많은 신념이 모인다는 뜻이다. 수많은 신념이 모인 곳은 갈등이 일어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작든 크든 공동체에서는 싸움이 꼭 일어난다. 하지만 공동체에 묶여있는 이상, 우리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미운 정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많이 싸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어릴 적 만화를 봤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악당이 한 명 있다. 만화를 보던 우리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을 해 악당을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악당이 내가 보지 않는 다른 만화의 악당과 싸우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내심 우리 만화의 악당이 이기길 바랄지도 모른다. 정말 미웠다면 다른 만화의 악당에게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오랜 시간 만화를 보며 미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생활관에는 나와 결이 완전히 다른 동기가 한 명 있었다. 처음엔 정말 싫었다. 항상 핑계만 늘어놓고 의욕 없는 눈빛에, 이상한 말투로 말을 했다. 나뿐만이 아닌, 생활관 동기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다른 생활관에 있는 같은 기수 동기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달려가서 내 생활관 동기를 감쌌다.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때, 우리 생활관의 다른 동기들도 모두 달려와 우리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싫어하던 동기에게 미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싸움은 결국 그 생활관과 우리 생활관 전체로 이어졌다. 간부의 등장으로 금방 중재되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가족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꽤 시간이 지나서, 그때 우리와 싸웠던 생활관의 동기 한 명이 다른 중대원과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생활관은 그 다른 중대원에게 말했다.
"왜 우리 중대원한테 뭐라고 하냐?"
얼마 전까지 싸우던 생활관이지만 결국 우리는 매일 얼굴을 보는 같은 소속 중대원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싸우던 그 다른 중대원과는 다른 대대와 대립할 때 또다시 "우리 대대"로 뭉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대립했던 그 대대와는 다른 사단과 대립할 때 또다시 "우리 사단"으로 뭉쳐진다. 이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 군인"으로 올라가게 되고, 나중엔 "우리나라 사람"에서 "우리 인간"으로 올라가게 된다.
만약 언젠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뛰어난 지적생명체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 침략을 위해 이곳을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싸우던 우리들은 하나로 뭉쳐 "우리 지구인"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외계인과 대립하던 도중 다른 우주에서 우리 우주를 침략하러 온다면? "우리 우주인"이 될 것이다. 아무리 싸워도 결국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안과 밖은 처음부터 구분되어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싸우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공동체다. 어차피 함께 해야 하는 공동체라면 미운 정이 드는 것보다는 고운 정이 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 싸우던 사람들도 올림픽 경기만 하면 하나의 마음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응원한다.
더 큰 건 바라지 않는다. 지구가 다른 행성과 올림픽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의 마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