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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9. 2024

불행을 이겨내는 방법

우리의 인생이 불행한 이유

 직장암 정밀 검사 결과를 보러, 그리고 궤양성 대장염 진료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워낙 젊은 나이라서 아닐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정밀 검사 직전에 교수님께 들었던 말을 계속 되뇌며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다가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약은 잘 챙겨드셨죠?"

 궤양성 대장염을 진단받은 날과 달리 교수님의 표정이 밝다. 무언가 안심이 된다.

 "지난번에 직장암이 의심된다는 부분의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교수님의 표정과 목소리, 말투로 안심할 수 있었다.

 "염증으로 인해 직장이 조금 좁아졌던 거였습니다. 암이 아니라요."

 다행이다. 다행인가?

 하나라도 막아냈으니 다행이지만, 이미 난치병에 걸린 나는 환자인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약국에서 궤양성 대장염 약을 잔뜩 타서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손에 있는 약 봉투를 보면 좋은 소식은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 하나가 있으면 거기에만 정신이 팔린다. 그래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우리는 인생을 항상 불행하다고 느낀다.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불행한 이유가 고작 저런 거였다면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다. 좋은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살아갈 용기를 평생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일은 정밀 검사 결과 직장암이 아니라는 것과 추적 치료를 꾸준히 하면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교수님의 말, 그리고 다행히 약이 잘 들어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내 몸이었다. 또 하나는 예비군 면제였다. 궤양성 대장염은 5급 전시근로역으로 판정받을 수 있는 병이다. 군대를 가기 전에 진단받았다면 군대도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예비군이라도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새옹지마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쁜 일 덕분에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이맘때쯤, 닭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좋은 일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그날부터, 나는 뭐라도 하기 위해 밀웜을 대량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회사에 들어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여 스스로 수익을 낼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곤충이든 동물이든 작은 생명체를 키우는 건 잘했으니 돈도 이걸로 벌어보자는 마음이었다. 훗날, 이 밀웜은 나의 수익이 아닌 닭의 건강 간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수익은 없었지만 무언가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더 이상 심연 속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힘들고 우울할 땐 몸을 움직여 보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작은 움직임을 시작으로 나비효과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더 용기가 생긴 나는 문득 생각이 난 첫 직장의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다녔던 직장에 들어간다면 몸이 아픈 것과 병원을 자주 가는 것의 양해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단기 알바를 몇 군데 다녀보며 몸이 아픈 이후 처음 돈벌이를 해봤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일을 할 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뿌듯했다. 이대로 조금씩 발전한다면 나는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벽을 부수고 온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을 할 때마다 허리가 아팠던 이유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게는 또 하나의 방해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류마티스 질환인 강직성 척추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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