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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자 Sep 10. 2024

정말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주는 걸까?

면역억제제 그리고 강직성 척추염

 아직 몸이 채 마르지도 않은 잠자리를 잡아먹기 위해 개미가 한 마리 더 나타났다. 그 개미의 이름은 강직성 척추염이다. 나를 방해하는 게 궤양성 대장염만으로는 모자랐나 보다. 먼저, 강직성 척추염에 진단받기 전의 이야기부터 해야 같다. 궤양성 대장염의 추적 관찰을 위해 대장 내시경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약이 잘 듣지 않나 봅니다."

 대장 내시경 결과를 본 교수님의 말이었다. 약이 잘 듣지 않는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다. 나는 분명 증상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그건 초기 진압을 위해 강한 스테로이드 약물을 쓴 효과로, 최악의 상태에서만 벗어난 것이었다. 아직도 내 대장에는 염증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고 출혈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약제를 바꾸는 것이다. 염증을 억제시키는 약제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면 염증이 생기는 원인으로 눈을 돌린다. 면역 쪽으로 말이다.


 잠시, 여기서부터 내 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니 넘겨도 좋다. 확인하기 쉽게 표시를 해두겠다.


 염증성 장 질환은 자가면역질환에 속하는 질환이다. 자가면역질환이란 몸의 면역 체계가 외부의 침입자를 공격해야 하는데 내 몸의 정상 세포와 조직까지 공격하는 질환이다. 나처럼 대장을 공격하면 궤양성 대장염, 소화기관 전체를 공격하면 크론병, 관절을 공격하면 류마티스 관절염 등 공격하는 부위에 따라 증상과 병명이 달라진다. 그렇게 공격당해 생긴 염증을 억제하는 약제를 사용하는 것이 1차 치료방법이다.

 나는 1차 치료방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다음으로 쓸 약제는 면역억제제라고 하는 녀석이다. 면역 세포의 증식을 억제시키는 약이다. 내 대장을 공격하는 면역 세포들의 증식이 억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면역 세포가 억제된다는 말은 면역력이 약화된다는 의미다. 감염 위험이 증가한다. 이외의 부작용이 많지만 기억나는 건 백혈구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맞게 추적 관찰을 진행하며, 부작용이 발생할 시 약물 복용을 중단한다.


 교수님이 내게 말한다. 이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겠다고. 나는 겁이 났다. 부작용이 너무 많고 젊은 나이에 복용을 시작하면 특정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 때문이었다. 걱정은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젊은 분들께는 면역억제제 복용을 건너뛰고 바로 생물학적 주사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주사는 보통 면역억제제로 효과를 보지 못할 때 넘어가는 치료단계다. (이 경우는 병원마다 다를 수 있다.) 나와 교수님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지 않는 걸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번에 보험 정책이 바뀌면서 바로 주사제로 넘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면 주사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정말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그날은 정말 우울한 날이었다. 조금씩 일어서며 용기를 얻고 있었는데 다시 무너진 것이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시련과 고통만 준다는 게 정말일까? 내가 견딜 수 있도록 고통을 나눠서 주고 있는 거라면, 대체 얼마나 남은 거지?


 진료가 끝나고 원래 먹던 약들과 면역억제제를 잔뜩 들고 집으로 향한다. 내 우울한 표정을 본 엄마는 결과가 안 좋았냐고 묻는다. 덤덤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지쳤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안 좋은 소식은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 내시경을 하는 날 찍었던 CT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는 교수님의 말이었다. 평소 허리나 골반이 아픈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 머리에 느낌표가 지나간다. 기억나는가? 나는 단기알바를 하러 갈 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소화기내과의 진료가 끝나고 한 군데를 더 가게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였다.

 류마티스 내과에서 새로운 교수님과의 진료가 시작됐다. 교수님은 내게 이것저것 묻다가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자고 한다. 검사실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짧고도 길었다. 대체 왜 이렇게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거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후, 검사결과는 다음 진료를 볼 때 확인하기로 하고 집으로 향한다.


 미리 이야기했다시피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이었다. 마찬가지로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었고, 평생 치료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두 개의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진 환자가 되었다. 신님, 아직도 더 남았습니까? 나의 물음에 신이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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