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로서의 페르소나, 아이덴티티에 관하여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도 사실은 매일 다른 도전을 하는 중이다. 매일 새로운 논문을 읽고 공부하며 이해하고 글을 쓰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나서 공부를 하다 보면, 오후가 되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고, 또 밥을 짓고, 함께 책도 읽고, 놀다가 씻기고 재우고 나서, 다시 공부를 하다 잠에 드는 일과. 나는 이 일과가 좋다. 내가 가장 마음 편안해 하고, 가장 즐거워 하고, 가장 스스로 뿌듯하다고 느끼는 일과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전해질 때,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설렌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늘 감동을 준다. 그 결과물에 담긴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겹겹이 촘촘하게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결과물들일수록 굉장히 단순하고, 심플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도의 정신력의 끝은 단순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순함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고, 날카롭다. 그래서 더 잘 전달된다. 내 논문도 그 경지에 가까워지기를.
연구를 하는 이유는? 왜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는가? 왜 임상 과정을 다시 시작했는가? 그 과정이 연구자로서의 아이덴티티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연구자가 되려고 하는가? 이 모든 것의 답은 하나. 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전문가로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것. 전문가이기에 전할 수 있는, 보탤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응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하는 이유는 내가 연구자가 되기로 한 그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 자신에게 매일 묻고, 매일 되새기는 말들이고, 언젠가는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연구에 대한 ’기술‘적인 ‘기초/기본 토대’는 석사 과정에서 쌓았고 (물론 새롭게 배울 연구 기술은 끝이 없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기술은 아주 기본적인 기술을 말한다), 연구자로서의 positionality와 philosophy의 기초/기본을 제대로 쌓기 시작한 것은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 라고. 석사 학위가 ‘the Master’, 박사 학위가 ‘the Doctor of Philosophy degree’인 것은 그냥 붙인 이름이 아닌 것.
박사 과정 들어와서 배운 여러 가지 중 하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 연구자로서의 positionality, persona.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첫 씨앗, 초심. 이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해 이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해 본다.
이어질 글들은 지금의 이 길과 이어져 있는 10여년 전 어린이 병원 간호사로서 기록해두었던 이야기부터 다시 들여다보려고 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 시작은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에 기록했던 글이며, 임상 현장에서 환아들과 가족들을 간호하며 간호사로서 성장하고,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민하던 흔적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간호연구자가 되겠노라 다짐하던 기록을 다시 읽어 보며, 실로 시간은 연결되어 있고 과거와 이어져 흐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어린이 병원 간호사 김가영일 적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