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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Mar 15. 2024

들려주고 싶은 소리

2013년 9월 기록

오른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왼쪽 귀는 보청기를 착용하면 들리는 정도의 청력을 가진 여섯 살 난 여자 아이가 오른쪽 귀에 인공와우 삽입술*을 받았다.

(*인공와우삽입술이란, 고도 난청 환자의 잔존 하는 청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 장치를 이식하는 수술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담당 간호사로 아이를 만났다.


수술 당일에는 기운도 없이 가만히 침대에만 누워있으면서 한숨을 쉬고, 멍하니 있어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술 부위 회복 속도는 대체로 빠르고, 그와 더불어 몸과 마음 전체를 아우르는 기운이 차려지는 모습과 속도를 보고 있노 라면 어느 순간에는 아프다는 것을 깜빡할 정도다.


그리고 퇴원에 가까워질수록 여느 때처럼 일상을 유쾌하게, 아이 답게 마주하는 아이들을 보며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다.


그래서 덕분에 어린이 병동은 아이들의 활기찬 기운이 함께 하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도 하루하루 회복해 갔고, 어느 날은 내가 입 모양을 크게, 그리고 천천히 "아파?"하고 물으며 귀를 가리키니,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손으로 먹는 시늉을 하며 "밥 먹었어?" 하면, 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입 모양을 크게 해 주고

아이는 눈빛과 고개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보니, 돌돌 감았던 압박 붕대도 풀고, 거즈 드레싱을 한 덕에 한결 머리가 가벼워져서 인지 병동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이를 안아주며, "뛰면 안 돼"하고 역시나 입 모양은 크게, 그리고 손은 저었다. 그랬더니, "네"하며 천천히 걸어서 엄마를 찾아갔다.


잘 웃고, 식사도 잘하고, 회복도 잘하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 색종이 서너 장과 알록달록 동물 스티커를 함께 선물로 주었다.


아직은 말소리가 정확하지 않아 "어-마! 아-바!" 라고 부르지만, 신나게 엄마 아빠를 부르며 뛰어갔다.


조금 후에 한 장 씩 색종이를 들고 와서는 접어 달라 길래, 종이학, 배, 저고리를 접어주며 "새", "배", "옷" 을 발음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면 "대", "배", "오" 라고 따라 발음하며 웃어 보였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바쁜 나를 붙잡고 놀아 달라는 게 미안하여 자꾸만 아이를 나무랐지만, 사실은 정말 즐거웠다.


바쁜 와중에 아이 덕에 많이 웃었고, 아이가 웃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바쁜 내게는 쉬어가는 쉼표였다.


정말 들려주고 싶다.

저 웃음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한지.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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