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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Mar 15. 2024

네 편이야

2012년 12월 기록

안녕, 선생님이랑은 이번에 처음 만나는 거네.
선생님 이름은 김가영이야. 만나서 반가워.  


병실을 옮기면서 처음 맡게 된 다섯 살 난 아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아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시작된 구토와 두통으로 응급실에 입원 하여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응급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 제거 수술 후 후유증으로 양안시력을 잃어 빛의 밝기나 빛의 지나감 정도만을 감지할 수 있고, 이번에는 뇌종양이 재발해 입원했다.


아이에게 내 소개를 했고, 아이도 반갑다며 자기소개를 해 주었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는 이번 토요일에 파티를 열거예요.
피자도 시키고, 생선도 테이블에 놓을 거예요. 저희 집에 큰 티브이랑 소파가 있는데요. 티브이 자리에 소파를 놓고, 소파 자리에 티브이를 놓았거든요. 지금 소파가 있는 자리에 소파를 빼고, 테이블을 놓을 거예요. 아주 큰 테이블이요. 그래서 피자도 놓고, 생선도 올려놓을 거예요.
신나겠죠? 그리고 초록색 풍선도 달 거예요. 노란색 풍선도 달고요. 멋지죠!  


아이가 갑자기 꺼낸 파티 이야기에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퇴원이 이번 토요일로 결정된 건지, 아니면 아이 혼자 파티를 열고 싶다는 것인지 말이다.


사실은 지금도 정확히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분명 파티 이야기에 한껏 들떠있었다.


응, 정말 신나고 멋있겠다.
초록색 풍선, 노란색 풍선도 달고, 알록달록 정말 멋있겠다.
어떤 색깔을 좋아해?


아이가 말해주는 파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했다.

아이가 생각하고 있는 그 파티 모습을.


그리고 아이가 색깔 이야기를 할 때, 슬펐다. 어딘가 모르게 슬펐다. 아이가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저 눈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을 때 기억에 담은 색깔들을 잊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슬퍼졌다.


저는 노란색도 좋아하고,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도 좋아하고,
흰색도 좋아하고, 검은색도 좋아해요.


아이가 좋아한다는 색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 눈을 보았다. 허공에 둔 아이 시선 속에 무지개 색깔들이 보이는 듯했다. 아이는 분명 무지개를 보고 있었다.


우와, 무지개 색깔들 다 좋아하는구나?
선생님도 다 좋아하는데!
선생님도 그 파티에 꼭 초대해 줘.
알록달록 풍선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생각만 해도 신난다!  


초대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 눈에는 즐거움이 더해졌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고개는 엄마를 향했지만, 시선은 엄마가 아닌 엄마의 어깨너머에 있어 또 슬퍼졌지만 그래도 아이가 즐거워해서 나 또한 좋았다.


정말요? 선생님도 파티에 오고 싶으세요?
엄마! 선생님이 파티에 초대해 달래요. 우리 파티 정말 신나겠어요!  


그렇게 꼭 파티에 가기로 약속을 하면서 그 방을 나왔다. 아이의 밝고 명랑한 모습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다음 라운딩을 하러 가서 아이에게 약을 줄 거라고 말하며 항생제를 링거줄에 놓았더니 주사 맞은 손이 아픈지 눈을 찡긋했다.


아유, 주사가 아프구나, 하며 손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때 엄마에게 묻는 거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편이야, 엄마?  


마음이 또 아팠다.

다섯 살 난 너에게 어느 누가 네 편이 아니었길래

내가 저 편인지 묻는 걸까 하며 마음이 아팠다.


뇌종양이 우리 편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편이 아니었던 것 같고,

아닌 것 같을 때가 많지만

끝끝내는 우리 편이었으면 좋겠다.


응, 선생님은 언제까지고 네 편이야.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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