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기록
간호를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때때로 지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들을 다독이고, 아빠들에게 잘하고 계신다고 격려해 주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간들은 누가 뭐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간들이다.
폐렴으로 입원한 아이가 내게 보여준 미소는 사랑이었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소아심장과 진료를 꾸준히 보는 아이인데, 폐렴까지 걸려 조금만 '무리'를 해도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혈압도 들쑥날쑥하고 만다. 그 '무리'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병실 복도를 뛰어서 가로지르는 것이거나 자기를 보러 온 사촌 오빠 이름을 목청 껏 불러보는 것 정도이다.
고모가 사 오신 새 신발을 신고 병실 복도를 뛰어가다가, 라운딩을 돌던 나와 마주친 네 살짜리 우리 아이. 나는 아이를 내 품에 와락 껴안고는 뛰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프면 안 되니까. 더 건강해져야 하니까.
그래서 아이 손을 잡고 방에 데려다주고는 알록달록 색종이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흰 도화지에 아이 얼굴을 그려주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게 누구지?라고 물었더니, 내 귀에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대고 ‘공주님이에요.’라는데 아이고,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자기 이름도 옆에 적어달라며 수줍게 웃어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시간들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이 시간들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간호사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