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멜로무비>
난 사람들에게는 제각각 사랑하는 영화 한 편쯤은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드라마라던가. 나에게는 오래전 내가 영화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에릭 로메르 감독의 짧은 영화 <소개 혹은 샤를로트와 그녀의 스테이크>,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몇 번을 돌려봤을지 모를, 그 영화들은 내가 그것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상황과 감정들을 그대로 필름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가끔씩 찬장 속의 좋아하는 위스키처럼 꺼내서 마시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세 편의 영화뿐만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영화들이 그렇게 내 삶의 어느 순간들을 장식하고 있다.
나의 첫사랑은 지금 말해도 부끄럽지만, <태양 닮은 소녀> 속 배우 문숙이었다. 고등학생 때 <태양 닮은 소녀>를 보고 문숙에 빠져들어 <삼포 가는 길>까지 정말 여러 번 돌려봤다. 그러나 그 이후 문숙은 갑자기 스크린 속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랑했던 이만희 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영화판을 떠난 거였다. 그 이후 거의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문숙은 다시 스크린 속에서 얼굴을 비췄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서였다. 70년대 영화 속 앳된 모습이 아닌 백발의 노인이 되어 나타난 그녀 역시 문숙이었으나, 내게는 어린 시절 품었던 치기 어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개봉한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시사회 때였다. 극 중 군산으로 여행을 온 윤영(박해일 분)은 어느 허름한 칼국수 가게에서 백발의 여사장을 만난다. 어쩌다 가지게 된 술자리에서 윤영은 그 여사장에게 묻는다. 혹시 성함이 무엇이냐고. 그때 여사장은 씁쓸히 얘기한다. “백화에요”라고. 배우는 문숙이었고, 그녀의 입에서 ‘백화’라는 이름을 듣게 됐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름이란, 문숙이 <삼포 가는 길> 속 연기했던 배역의 이름이었다. 정말 내가 어린 시절,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끝내 삼포로 가지 못하고 어쩌다 그녀가 군산에 있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내 첫사랑의 모습을 마주했다. 그러면서 나는 느꼈다. 난 배우 문숙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백화’를 사랑한 것이었다고.
가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잊고 살았다고 생각한 옛사랑이 불현듯 떠오를 때라던가, 갑자기 불쑥 내 앞에 등장하는 순간들. 찢어버린 일기장 속 소박한 한 구절까지 떠오를 정도로, 옛사랑과 함께 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어느 날의 습도, 어느 날의 어느 곳에서의 냄새, 점멸하던 신호등의 색들도 떠오른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냥 그 순간들을 ‘아름다웠다’라고 곱씹을 수는 없다. 저 어느 구석에서 씁쓸함이 내 목구멍을 타고 역류해 답답하게 가슴을 죄어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은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혹은 이미 촬영이 끝나버린 영화를 계속해서 편집하면서 정말 ‘어느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영화’라는 오명을 씌어 마음의 창고에 처박아 둔다.
넷플릭스 시리즈 <멜로무비>는 우리가 언젠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찍 곁을 떠나버린 부모님, 정말 사랑했지만 언젠가 내 곁을 떠나버린 옛 연인, 내게는 지금도 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극장을 잘 찾지 않게 된 영화와 같은 것들에 대해 그려낸다. 주말 사이 <멜로무비>를 정주행하면서 이미 편집을 다 끝내뒀던 마음속의 영화 몇 편을 끄집어 봤다. 그 흔한 플래시백도 없었고, 정말 영화 같은 슬로우모션도 없었다. 그저 짤막한 화면의 몽타주로만 구성된 그 먼지 쌓인 사랑의 기억들을 살피며,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위대한 철학자처럼 의자에 앉아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질문의 해답은 내놓지 못하고, 하염없이 의자를 삐걱거리기만 했다.
<멜로무비>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배우를 꿈꿨지만, 영화 평론가가 된 고겸(최우식 분)이 오래전 형에게 일어난 사고 탓에, 말도 하지 못하고 떠났던 옛사랑 무비(박보영 분)를 다시 만난다. 그 사이 영화감독이 된 무비에게는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쓰레기 구남친’이 평론가가 되어 나타났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쓰자니 자신이 구차해진다. 하지만 끊임없이 고겸은 자신 앞에 나타나 감정을 흔든다. 고겸 역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옛사랑이 나타나자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한 번 끝났던 사랑은, 이미 그 예전과 같지 않다. ‘끝이 났다’라는 기억이 계속해 감정 속에 끼어들 뿐이다.
사랑만 하기에도 바빴던 과거와 달리, 사랑만 하기에는 힘든 삶의 여유롭지 않은 팍팍함들도 끼어든다. 이건 비단 극 중 고겸과 무비의 이야기뿐만이 아닌, 고겸의 친구인 시준(이준영 분)과 주아(전소니 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것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카카오 함량 99%의 초콜릿을 먹는 것만 같은 쓰디쓴 감정이 올라온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데, ‘만난 것은 헤어지게 된다’라는 회자정리에만 머물러 있는 어린 소년을 보는 것처럼 애석하기만 하다. 그래서 언젠가 거자필반의 시간이 오더라도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모든 ‘끝나버린 사랑’은 처음의 설렘이 아닌 마지막의 지독한 기억만 남는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게 됐지’라는 달콤한 기억은 사라졌고, ‘우리는 그래서 헤어졌지’라는 마음만 남는다. 그 역시 ‘끝나버린 사랑’에 괜한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시도한 영화적 편집일 터다. 허나 이미 끝나버린 영화에 내가 ‘이건 아니야! 결말은 이랬어야지!’라고 소리 질러봤자 결말이 바뀔리는 만무하다. 한때 배우였던 우리는 그렇게 지금은 평론가가 되어 ‘그 영화는 이랬어’라고 평가하는 거다. 이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건 프랑스의 한 작가가 남긴 이 말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해 비평가가 된 사람은 군인이 되지 못한 정보원과 같다.”라는.
우리는 언제나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그 영화 속의 배우가 되어 정말 끝내주는 ‘멜로 영화’를 완성하고 싶다. 하지만 실상 배우가 되면 우리는 영화배우가 아닌 연극배우가 된다. 영화적으로 대충 뛰어넘어도 될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실시간으로 이 시간을 끌어가야 한다. 슬로우모션도 점프컷도 없이 삶의 지지부진한 순간과 사랑의 연극을 이어간다. 언젠가 삶이 만드는 너무 현실과 같은 고통들이 연극으로 침범해 온다. 연기 도중 갑작스럽게 무대를 향해 욕을 하는 진상의 관객처럼, 우리의 이 연극을 완벽하게 이끌어갈 수 없게 만드는 존재들도 등장한다. ‘끝내주는 멜로 영화’인 줄 알았는데 ‘끝나버린 멜로 영화’가 되어버린 그 마지막 지점들이 기어코 온다.
그럼에도 <멜로무비>는 속삭인다. ‘영화 같지 않더라도 어때?’라고 살살 구슬리더니 ‘이 정도면 꽤 영화 같지 않아?’라고 귀엽게 말한다. 시니컬해진 내 마음도 ‘그래, 뭐 이 정도라면’이라고 말하면서 별점 3점을 줘도 무방할 사랑의 순간들에 5점을 주고 싶어진다. 덕분에 지난밤, 굳이 끄집어내서 떠올렸던 나의 ‘멜로무비’들에도 나는 후한 평론가의 마음으로 5점을 남겼다. 그러면서 난 예술가가 되지 못한 평론가가 아닌 ‘언젠가 예술을 할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끝내주는 ‘멜로무비’를 못 찍더라도, 시시콜콜한 삼류 연극을 상연하게 될지라도 그 역시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까지 가지게 됐다.
끝난 사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고겸을 마음속에서 불태워버렸던 무비는 갑자기 시간이 지나 자기 앞에 등장한 그를 보고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사람 같아 보였다”라고 얘기한다. 나 역시 그 긴 시간의 마음 여행을 끝내고 노트북에 앉아 글을 쓰면서, <멜로무비>의 장면들을 하나씩 곱씹었다. ‘사랑을 하고 싶다’는 외로운 마음보다, 사랑하게 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난 것 같아 설렜다. 이전에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처음 꿨을 때 느낀 설렘이 이런 것이었나. 어찌 됐든 ‘이 정도의 <멜로무비>라면 꽤 해볼 법하겠다’란 감상을 남기면서 오래 전의 내 연인들과 사랑했던 것들에게 지질하면서도 몽글몽글한 인사를 전한다. 안녕, 나의 사랑, 나의 청춘, 그리고 내 영화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