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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Mar 04. 2024

역사라는 트라우마, <파묘>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1990년대는 한국이 새로운 변화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군사 정권이 통치했던 사회를 넘어서 일반인 출신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중심에 있던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운동의 하나였던 ‘역사바로 세우기’ 운동을 실시했다. 그중에서 가장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샀던 던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시작한 ‘쇠말뚝 뽑기 사업’이었으며, 같은 해에는 서울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가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거행됐다. 이 사업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역사를 청산하겠다는 야심이 담겨있었기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일의 감정이 커다란 파도처럼 일렁였다.


이러는 사이, 한국 사회에서는 두 가지 단어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신토불이와 민족정기였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최고여’라는 표어로 떠오른 ‘신토불이’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번져가면서 당시 사회에 일종의 척화비로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유행어였던 ‘민족정기’ 역시 이와 비슷한 형국이었다. 이 민족정기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이 바로 쇠말뚝 뽑기 사업과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사업이었다. 중심에는 풍수지리 사상이 자리했다. 풍수지리상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 앞에 위치한 것은 조선 왕실의 왕기를 끊기 위한 것이었으며, 특히 북악산의 대(大)라는 형상에 입각해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일(日) 모양인 조선총독부 건물과 본(本)을 형상화한 과거 경성부청(구 서울특별시청 건물)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건설됐다는 설들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특히 이는 당시 지상파 뉴스에도 종종 등장한 설들이었지만, 후에는 그저 낭설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다수 의견이 모였다.


쇠말뚝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과거 일제가 조선 곳곳에 쇠말뚝을 박고 다니는 일이 성행하자 민중 사이에서는 풍수적으로 중요한 곳에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를 끊는다는 풍수침략설이 등장한 것. 이에 다수 언론에서도 이를 중요하게 다루었고, 문민정부는 일제 치하에서 일어났던 부당한 역사의 산물들을 모두 처리하겠다면서 전국적으로 ‘쇠말뚝 찾기’ 붐이 불었다. 마치 고대 유물을 찾아 나서는 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처럼, 국민들은 국토 어딘가에 박혀있는 쇠말뚝을 찾아 뽑아대고 다녔고, 정말 무수한 쇠말뚝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광풍에는 늘 반전이 존재한다. 풍수지리상 의미가 있어야 될 곳에 박혀있어야 할 쇠말뚝들이 아무 의미 없는 곳에서도 발견됐고, 조선총독부 기록에서도 이 쇠말뚝들에 대한 어떠한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쇠말뚝의 용도에 대한 다수의 논의들이 다시 펼쳐졌고, 결국 쇠말뚝은 일제가 지난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위해 토지측량용으로 박아둔 것이라는 게 정설이 됐다.


영화 <파묘>를 이야기하기 위해 위의 내용을 굳이 풀어쓴 이유는 이 전반의 상황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설정일뿐더러, 이를 앞에 몰아서 써놔야지만 후에 이 글의 전체적 짜임새가 헤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둔다. 그렇다면, 이제 전체적인 설명의 영역은 끝이 났으니 <파묘>라는 영화를 파헤치기 위해 삽을 들 때가 됐다.

영화 <파묘> 스틸컷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파묘>의 이야기 전반부를 간단히 써보자면 이렇다. 풍수지리로 먹고사는 지관 상덕(최민식 분)과 그의 장의사 동료 영근(유해진 분)에게 어느 날,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도현 분)이 솔깃한 제안을 해온다. ‘밑도 끝도 없는 부자’라고 표현되는 한국계 미국인 집안이 조상의 묫자리가 불편해 생긴다는 ‘묫바람’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이 묘를 파고 화장을 해서 이 집안에 내려진 이상한 저주를 풀어보자는 거다. 하지만 웬걸 이 묘는 상덕이 생전 본 적 없는 악지 중의 악지에 위치해 있다. 묫바람이 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상덕은 파묘를 거부한다. 허나 이 저주 탓에 생사의 기로에 있는 이 집안의 아기는 살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화림의 말에 상덕은 결국 이 묘를 파헤치기로 한다.


<파묘>는 앞서 <검은 사제들>, <사바하>와 같은 걸출한 한국형 오컬트 영화를 만들어냈던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상업영화 연출작이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에서 가톨릭 신부와 사제가 악마가 몸에 깃든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구마의식을 펼치는 내용을 담아내면서 자신만의 영화적 세계 구축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장재현의 오컬트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천명한 영화가 바로 <사바하>였다. 필자는 <사바하>가 기독교적 상상력, 불교적 상상력, 한국 토속신앙적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구조화하면서 ‘한국의 오컬트 호러란 이러한 문화적 상황에서 비롯된다’라는 것을 보여준 영화라고 평가한다.


‘호러’라고 표현되는 공포 장르는 인간 심연에 기반하고 있는 공포심을 자극해야 하는 장르이기에, 하나의 인격체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 공포까지 탐구해야 하는 굉장히 껄끄럽고 어려운 장르 중 하나다. 단순히 깜짝 놀라게 만드는 감정(서프라이즈)만을 노린다면 이 호러는 철저히 상업적인 계산 아래에서 제작됐을 뿐, 깊은 여운이나 묵직한 공포까지 자극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호러 장르의 작품은, 이를 주소비하는 문화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 문화권을 예로 든다면,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가 호러 영화의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었다. <샤이닝>은 단순히 관객을 서프라이즈로만 자극하는 것이 아닌 그 심연 안에 깔린 공포가 발현되는 이유까지 파헤쳐 인간 근간의 공포심을 건드렸던 영화였다. 그럼으로써 묵직한 여운까지 남겨내면서 미국 호러를 대표하는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


<사바하> 역시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컬트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그 속에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또한 한국 문화권을 넘어 보편적인 관점으로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까지 던지면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사바하>는 호러 장르에서 가장 선행돼 가져왔어야 할 ‘공포’를 서프라이즈의 영역에서만 이끌어냈다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사바하>를 장르적으로 분류해야 한다면 ‘오컬트 호러’보다는 ‘오컬트 스릴러’라고 표현하는 게 올바르다고 본다.


하지만 <파묘>는 <사바하>와 다르게 ‘오컬트 호러’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이전에 한국의 신앙에 대한 탐구를 철저하게 해 놨던 <사바하>의 작업이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파묘>는 이 신앙적 특성들을 이용해 과연 우리 문화권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 작품이라고 판단하고 싶다. 그래서 영화 속 지관 상덕은 묘를 판다. 과연 한국 문화권에서 ‘묫바람’처럼 불어오는 공포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파묻혀 있던 관을 파낸다.

영화 <파묘> 스틸컷

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


풍수지리상 가장 악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묘의 비석에는 이름도 없다. 그저 위도와 경도만 쓰여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무덤의 자리를 봐줬다는 스님의 이름도 요상하다. 기순애라니. 하지만 이미 파기로 했으니 파보기는 해야 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화림은 파묘와 동시에 대살굿을 하기로 한다. 혹시 묘를 파면서 화를 입을지 모르니 그 살을 동물에 보내면서 파묘식을 진행하자는 거였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묘를 팠다고 생각이 됐을 때부터 이 영화는 관객을 본격적인 공포의 향연으로 밀어 넣는다. 알고 보니 이 묘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묘였으며, 악지에 묻힌 그 원한으로 인해 자신의 자식들을 찾아가 마구 살을 뿜어댄다. 그렇게 영화는 마치 국민 내면에 있는 공포의 근원이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에 대한 반감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게 만든다.


하지만 이 친일파의 관과 유골을 화장하고 나서 모든 살의 기운을 물리치고 나서야 <파묘>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국면으로 들어선다. 바로 이 친일파의 무덤 밑에 또 다른 묘가 있었다는 상덕의 발견에서부터다. 그리고 이 부분이 <파묘>의 구조적인 측면을 바라볼 때 프로이트적인 해석을 끌어와야 하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을 구조화하면서 의식, 전의식, 무의식이라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학설을 내놨다. 단순히 표현해 보자면 의식이라는 것은 실생활에서 인식하고 있는 영역에서 나타나는 정적 활동을 의미한다. 전의식은 기억의 영역이자 의식과 무의식을 이어주는 부분이다. 이어 무의식은 대부분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되는 영역이자,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경험과 기억의 부분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의식은 조금만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면 끄집어낼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이지만, 무의식은 그 밑에 더 깊게 파묻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결국 우리 인간의 감정이 발현될 수 있게 하는 기반의 영역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파묘>를 이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입각해서 바라보자면, ‘이름 없는 묘’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의식으로, 그 밑에 있던 친일파의 관은 전의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의식의 단계에서는 한국 문화권에 존재하는 트라우마 영역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파묘>는 한 번 더 묫자리를 판다. 그리고 그 밑에 수직으로 박혀있는 거대한 관을 발견한다. 드디어 한국 문화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무의식의 영역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관에는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존재가 담겨있었다. 바로 그 스스로가 쇠말뚝이 되어버린 ‘다이묘’, 즉 일본의 귀신 ‘오니’였다.

영화 <파묘> 스틸컷

반일의 의식은 어디서 오는가


이미 전의식의 영역에서 우리는 <파묘>가 한국 국민에게 작용하는 반일의 의식을 다루고자 함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의식을 파헤쳐보면서 '과연 반일의 의식이 어떻게 발현됐는가'라는 질문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본격적으로 우리  무의식에 파편화되어서 존재하는 것들을 한 번 제대로 끄집어내서 전시해야 할 시점이 됐다.


우선 영화 상에서 일본에 대한 공포로 표현되는 ‘오니’의 정체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오니가 되었고, 왜 오니가 일본이 아닌 한국의 땅에서 등장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니가 된 다이묘와 친일파의 영혼이 빙의된 이의 대사 중에는 그 정체에 대한 두 가지의 단서들이 발견된다. “은어와 참외는 준비했는가”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다. 이미 다수의 해석들에서 등장했듯이 은어와 참외는 각각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상징한다. 일제에 대한 영화라면 이토 히로부미나 천황 쇼와가 등장해야 할 것을, 왜 갑자기 1500년대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 영역은 바로 반일의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1500년대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끊임없이 조선 정벌에 대한 야욕을 펼쳐왔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그 처절한 역사의 기억들이 파편화되어 축적되면서 조선은 일본에 대한 부정의 감정을 가져왔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이제 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제강점기의 기억들을 가져온다. 여기서 여우는 다이묘의 육신을 이용해 ‘쇠말뚝 오니’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기순애 스님을 표현한다. 기순애는 사실 무라야마 준지라는 이름의 일본인. 영화는 일제강점기 시절 백면금모구미호를 섬기던 신사 출신이자 당대 최고의 음양사였던 무라야마 준지가 백두대간 정기의 척추를 끊기 위해 오니가 된 다이묘를 이곳에 쇠말뚝처럼 박아두었다고 설정한다. 기순애는 그 이름 그대로 키츠네(일본어로 여우)를 뜻한다. <파묘>는 반일의 대한 무의식이 단순히 일제강점기에 생성된 것이 아닌 오래전부터 한국 국민의 의식 기저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이 두 설정을 통해 설명한다.

영화 <파묘> 스틸컷

쇠말뚝이라는 트라우마


<파묘>는 이러한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면서 단순히 “우리는 이렇게 일본에 당해왔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친절한 해석을 하면서까지 이 영화를 곱씹어보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기에 쇠말뚝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쇠말뚝의 성질 중 다수는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하다. 영근은 영화 중간 쇠말뚝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덕에게 이렇게 반박한다. “그거 99%는 거짓말이잖아”라고. 여기서 상덕은 “그렇다 해도 나머지 1%는 어쩔 건데”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상에서 무라야마 준지가 만든 이 오니는 쇠말뚝의 역할로서 그 자리에 박혀있음이 맞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의 상황설명이 존재한다. 정말로 이 쇠말뚝이 풍수상의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면, 관객이 보아야 하는 장면은 오니가 사라지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딸의 결혼식을 올리는 상덕이 아닌 “고대하던 통일을 했습니다”와 같은 대사가 흘러나오는 대한민국 사회의 어떤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영화는 이러한 장면이 아닌, 아무것도 변한 것 없어 보이는 삶의 풍경만을 펼쳐 보인다.


실질적으로 트라우마 치유는 드라마틱한 게 아니다. 트라우마를 치유해서 삶이 완전히 바뀐다는 건 그저 상상 속의 일이다.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치유 이론의 중점은 망각된 기억을 회복하고 그것을 의식의 주체가 극복하는 과정이다. <파묘>는 한국 국민들의 무의식에 깊게 자리하고 있던 일본의 침탈 역사의 트라우마를 의식 수준을 끌어올려 그것을 극복해 내는 과정의 비주얼적인 표현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렇기에 <파묘>를 단순히 반일 의식의 오컬트 영화라고 설명하기에는 다소 껄끄럽다. 한국 국민성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반일의 의식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하는 호러영화라고 표현한다면 조금은 매끄러워진다. 그리고 영화는 그 지점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 스스로가 그 반일의 의식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까지 드러낸다. 쇠말뚝이라는 어떠한 허상의 형체를 무찌르는 것이 아닌 저 무의식 깊게 파고들어 있는 역사적 기억들을 끄집어내어서 과거의 트라우마들을 치유해내야지만 문화권 전반에 파고들어 있는 ‘일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다. 단순히 쇠말뚝을 뽑고 조선총독부를 철거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물론 트라우마를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전의식의 영역으로 올려진 그 기억의 상처들은 우리 스스로가 늘 극복해야 하는 과정에 있는 것들로 남는다. 오니를 물리치고 나서도 여전히 이 오니에 대한 불안감을 순간순간 떠올리며 살아가는 상덕, 화림, 영근, 봉길처럼,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근대사와 현대사에 존재하는 일본의 침략과 강점의 역사를 그저 파묻어놓고 생활할 것이 아니라 전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끊임없이 기억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그 기회들을 너무나 많이 놓쳐왔다. 그저 눈 앞에서 그 역사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고 기억 깊숙한 곳에 묻어두면서 '회복'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건 회복도 극복도 아닌 회피였다.


이제 우리는 <파묘>로 저 무의식 깊숙하게 박힌 역사의 트라우마들을 바라보게됐다. 하지만 이 극복의 기회를 단순히 ‘반일을 하자’라는 프로파간다로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시점부터는 우리는 이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쇠말뚝을 뽑은 자리에 척화비를 세우는 것보다는 미래를 향한 이정표를 세우는 게 훨씬 이로운 일임은 분명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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