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뭐예요?”
평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언젠가부터 방송 중인 드라마의 70~80%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2년 전의 일. 그 수많은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었다니.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저 질문을 남긴다. 그러면 성심성의껏 보고 있는 드라마들을 열거하면서 각 드라마들의 매력을 설파한다. 누군가에게 드라마 영업을 성공했을 때만큼이나 뿌듯한 일도 없다는 걸 많이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드라마를 보고 있을까. 연예부 기자로 살면서 해야 하는 당연한 일 때문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이전에도 나는 늘 드라마를 끼고 살고 있었다. 지금처럼 쏟아지는 드라마들을 다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보고 있던 드라마들은 차고 넘쳤다. “왜 나는 드라마를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나의 인생을 함께 했던 드라마들을 회고하는 것만큼, 그 질문의 답을 찾는 쉬운 방법은 없을 것만 같았다.
가장 먼저 내가 처음으로 본 드라마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더듬어보다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어머니가 분만실로 들어가기 전 보고 있던 드라마는 무엇이었을까. 이걸 기억한다면 나는 세계 최고의 기억력 천재가 아닐까 싶다. 만약 분만실 이후의 기억을 되새기더라도,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심심함을 억누르기 위해 틀어놨을 드라마, 내가 기어 다니거나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집에서 틀어져 있었을 드라마까지 생각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내 기억 속 가장 강렬하게 박혀있는 드라마를 먼저 끄집어내기로 했다. 1999년 방송된 MBC <허준>이었다. 그 이후에는 연도별로 범주를 짰고, 각 연도별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들을 추렸다. 몇 편은 정말 고심했다. 그 중에서 비슷한 계열이라고 생각한 드라마들은 함께 쓰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약 서른 편에 가까운 드라마들이 선정이 됐고, 이제 차근차근 그 드라마들에 대한 기억을 곱씹어보고자 한다.
<허준>에 대한 글 이후에는 10대, 20대, 30대를 범주로 삼았다. 연도가 걸쳐진 드라마는 첫회 방송을 기준으로 삼았다. 나의 시대를 함께 지내온 드라마들을 회고하는 일들이 벌써부터 흥미를 돋울 것 같아 온몸이 간질거린다. 다만 30대는 너무 짧게 살았기 때문에, 2021년부터는 OTT 시장의 급부상과 함께 떠오른 K-드라마들의 열풍에 중심을 둬서 쓰기로 했다. 이 시기 등장한 보물 같은 드라마들이 워낙 많으니, 10편을 고르는 건 꽤 수월한 일이었다. 다만 여전히 나는 드라마를 미친 듯이 보고 있으니, 이건 과거형이자 현재진행형의 프로젝트일 것 같다. 30대의 10편들이 어떤 작품으로 또 바뀔지를 생각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지금도 다양한 글들을 쓰고 있지만, 이건 취미이자 나의 도전으로 삼으면서 써보자고 결심했다. 일단 일주일에 한 편씩. 계획형 인간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소름은 돋지만, 드라마에 대한 나의 애정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나의 삶과 함께한 드라마를 누군가에게 영업한다는 생각으로 쓰겠다.
누구나 다 봤을 유명한 드라마도 많지만, 혹시나 보지 않았을 드라마를 나 덕분에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뿌듯한 일은 없을 것만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기를 놓치고 몇 년 뒤에 본 드라마들은 목록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거다. 기회가 된다면 부록에서라도 만날 수 있기를. 만약 이 목록에 자신이 정말 애정하고 즐겨봤던 드라마가 없다고 아쉬워하거나, 나를 두고 ‘드라마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언제나 그렇듯 서로의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 또한 어쨌든 이 드라마들이 선정된 건 정말 재밌게 보기도 봤지만, 내 인생과 결부되어 있는 부분이 큰 이유도 있다.
자 이제 그만, 여는 글이 너무 길면 기대만 높이는 법이다. 그래서 일단 써보겠다.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애정 깊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또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이 드라마들은 꼭 봐주셨음 한다고 읍소한다. 어쩌면 당신의 인생 드라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나의 인생 드라마가 누군가의 인생 드라마가 된다면 그게 ‘드라마 덕후’의 삶에 가장 큰 이력이 될 것 같으니, 미리 감사하다는 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