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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의 자세, <허준>(1999)

by 안태현

때는 바야흐로 일천구백구십구년.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 Y2K의 불안과, 새 시대를 연다는 밀레니엄의 설렘이 공존하던 시기. 대한민국은 큰 열병을 앓고 있었다. 2년 전 터진 외환위기 사태가 여전히 봉합이 되지 않은 상황 탓이 컸다. 당시 8살이었던 나의 집안 사정도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아버지는 경북 성주에서 성업 중이었던 주유소를 접고 고향이었던 경북 영천으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 가족 역시 아버지와 함께 이주를 해야 했다. 그 시대나 요즘 시대나, 자본 사정에 의해서 가정의 분위기는 급작스럽게 바뀌어갔다.


살던 곳의 변화와, 다니던 학교의 변화, 주변 관계의 변화 속에서 어린 나이의 나는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새로운 동네의 지리도 익혀야 했고, 새 동네 친구도 사귀어야 했다. 다행히 동네의 친구들이 학교의 친구들로 자리 잡으면서 나름 편한 구석도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종말이 올 세상을 앞두고 짧았던 나의 삶의 시간들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후자의 이야기는 농담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과 나의 고군분투를 치유해주기 위함이었을까. 조선의 명의 허준이 등장했다. 배우 전광렬의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MBC <허준>의 인기는 지금 생각하면 ‘방탄소년단 신드롬’에 버금갔다.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 시청률이라는 성적을 뒤로 하더라도, <허준> 방송 이후에는 어떤 식당을 찾아도 《동의보감》에 나왔다는 음식의 효험을 담은 안내판들이 가득했다. 어떤 족발 가게에서는 족발은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미용에 좋다고 적어두고, 출처를 《동의보감》으로 표기해둔 것도 보았다. 과연 허준이 당시에 콜라겐이라는 단어를 알았을까는 아직도 의문이다.


또한 <허준>은 해외로도 수출이 많이 됐더란다. 특히 이라크에서는 8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대히트를 쳤다. 덕분에 <허준>의 주연 전광렬은 이라크 영부인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아마 이 한류의 바람이 계속 이어졌더라면, 지금은 갓을 쓰고 다니는 중동인들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을 것만 같다.


내게 이 시기 드라마란, 어머니가 매 시간마다 틀어놓는 정각 알람과도 같았다. 수많은 드라마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그 곁에서 곁눈질로 본 드라마들의 장면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허준>은 달랐다. Y2K의 불안함이 컸던 탓일까. <허준>만은 내게 정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가장 처음 본 드라마의 기억을 더듬던 내게 ‘첫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줬다. 과연 어떤 강렬한 인상이냐고, 말하자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임현식 배우의 명대사 “줄을 서시오”가 첫 번째고, 극 중 허준(전광렬 분)이 스승 유의태(이순재 분)의 유언을 따라, 그의 시신을 해부하면서 장기를 관찰하는 장면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지금 생각하면 참 서글픈 일이지만, 극 중 예진을 연기했던 황수정의 단아한 미모였다. 황수정의 단아한 미모에 빠져든 나는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으면 다른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대고서 마음속으로는 황수정을 늘 되뇌고 있었다. 하지만 8살의 첫사랑은 설익은 감이 홍시도 되기 전에 떨어져 버린 것처럼, 너무 서글프게 막을 내려야 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알겠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연예계에서 마약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좋아하던 연예인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퇴장하는 모습을 보는 건 늘 씁쓸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도 어떠한 연예인에 과도한 팬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연예부 기자로 살게 되면서 사고를 친 연예인들이 자숙의 기간을 가지거나 아예 연예계를 떠나버릴 때를 많이 목격하게 됐다. 그럴 때 그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짓는 팬들의 마음이 굉장히 잘 이해가 갔다. 저들이 느낄 배신감과 슬픔은 어느 누가 위로해도 보듬어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Cap 2022-10-07 18-24-19-116.jpg MBC <허준>

여덟 살의 나이에 <허준>을 시청하면서 드라마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 늘 “줄을 서시오.”나 “홍춘이” 같은 유행어들을 따라 하면서 <허준> 열풍에 동참했다. 그렇지만 진짜 감동을 준 장면은 따로 있는데, 앞서 언급했던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는 허준의 모습이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이라고, 개인의 신체를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된다는 당시 조선 유교의 분위기 속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시신 기증을 하는 장면은 꽤 충격이 컸다. 특히 그 묘사가 정말 사실적이었기에, 나는 실제 사람의 신체를 이용해서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여튼 허준은 유의태의 시신을 훼손, 아니 해부하면서 진정한 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후 조선 최고의 명의가 된 허준은 못 고치는 병이 없다시피 했고, 후한 말의 화타 정도는 기본적으로 따귀를 여러 차례 후려칠 정도의 의학적 능력을 가지게 됐다. 허준의 이 같은 성장은 모두 유의태 덕분이었다. <허준>은 허준이 어떤 능력을 가진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장의 과정에 중점을 둔 드라마인데, 이 성장의 과정에서 유의태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유의태가 허준에게 물 뿌리고 욕하는 성격을 가진 괴팍한 인물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또한 유의태는, 허준이 성인철(변희봉 분)에게 추천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사람의 병을 살리는 의원의 본분을 잊고 출세에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정말 허준이 출세할 수 있을 기회였던 추천서까지 불 태워버렸다. 이 모습을 보면 정말 ‘꼰대’라고 볼 수 있겠지만, 유의태는 이후 허준이 과거 시험장에 가다가 병자들을 돌보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지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감복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니깐 유의태는 편협한 사고를 가졌기보다 제자가 올바른 길을 가길 바라는 진짜 참스승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허준이 유의태의 밑에 있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가게 됐을지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었을까. 특히 허준 역시 유의태에게 혼이 나기 전에는 출세에 대한 생각에 빠졌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출세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스승 덕분에 그는 올바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참스승 유의태의 자세는 이후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사람을 편협한 자세로 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과 누군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내 한 몸 불사를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후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오면서 유의태와 같은 진짜 스승의 자세를 가진 선생님을 과연 만난 적이 있을까 싶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유의태처럼 제 한 몸 불사르는 선생님보다 사랑의 매로 다스리는 선생님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대학 때 만난 교수님들이 내게는 진짜 선생님이었는데, 그 분들은 사랑의 매로 다스리기보다 사랑의 학점으로 나를 다스려주셨다. 표현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대학 때 나를 지도했던 선생님들을 정말 존경한다. ‘좋은 스승’을 정의하라면, 유의태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한 말과 마음을 전해주셨던 분들이다. 덕분에 나는 삶을 바라보는데 새로운 시선을 깨우칠 수 있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는 이라고 생각한다. 유의태 역시 제자인 허준에게 새로운 시선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 그릇을 느낄 수 있는 대사가 바로 이거다.


“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곧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거라. 그리하여 사람의 오장과 육부의 생김새와 그 기능을 확인하고, 몸 속에 퍼진 삼백예순 마디의 뼈가 얽히는 이치와 열두 경력과 요술을 살펴서, 그로써 네 의술의 정진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대사를 글로 옮기면서도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누구 하나 제자가 올바른 학자이자 의원의 길로 걸어가게 하기 위해서 이런 희생을 치를 수 있을까. 선생(先生)이란 먼저 삶을 살아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살아온 삶의 정신을 통해서 제자가 새로운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는 유의태가 진정한 ‘선생’이었다.


그렇게 유의태의 정신을 이어받은 허준은 조선의 의원 ‘선생’이 됐다. 《동의보감》을 펼쳐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드라마로 재탄생 돼, 그 당시 암담한 경제 상황에 힘들어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힘이 돼줬다. 사람을 치유하는 것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라고 하지 않나. 드라마 <허준>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마음을 치유해준 진정한 심의(心醫)였다.


덕분이었을까. 2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 사람들은 “망했다”라는 소리를 하기보다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외치게 됐고, 8살 소년에게도 Y2K는 오지 않았고, 희망찬 밀레니엄의 시대가 열렸다. 이 희망. 내가 드라마를 처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던 때 만난 <허준>을 통해 나는 단순히 드라마를 재미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어떠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스승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을 거다. 그래서 그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변하게 됐다. 드라마를 통해 삶을 배우고, 드라마를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드라마를 통해 삶을 내다볼 수 있었다. 삶을 담은 게 드라마였다면, 드라마 덕분에 내 삶이 달라졌다. 내 삶은 점점 드라마를 닮아갔고, 그렇게 내 삶이 드라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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