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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한아! 구시대와 싸워라, <야인시대>(2002)

by 안태현

2002년의 여름을 기억하는가. 뜨거웠던 광장의 열기와 붉은 악마들의 광기 어린 함성들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그 풍경보다는 맥주 누린내 나는 호프집의 풍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내 나이 열한 살. 어떻게 그 나이의 소년이 호프집에 갔냐고? 당연히 부모님과 함께였다.


아직도 호프집에서 “저것도 못 넣냐.”라고 핀잔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파편화 된 기억들을 짜 맞춰 보자면 아마도 16강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였는데, 안정환 선수의 페널티 킥 실축이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다행히 안정환 선수가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넣으면서 그날의 경기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됐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순간을 내가 직접 TV로 시청했다는 건, 꽤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그 가슴 설렘을 나만 느낀 건 아니었다. 월드컵 기간 동안 학교 운동장에서는 미래의 박지성, 미래의 안정환이라고 자칭하는 아이들이 나와서 빠른 발재간을 자랑하면서 축구를 해댔다. 물론 축구에 완전 젬병이었던 나는 팀에 낄 생각도 하지 않고, 운동장에 있는 철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즐겨했다. 하지만 최소 인원 22명이 필요한 축구의 특성상 한 번씩 친구들이 불러내 축구를 했던 일도 있었는데, 분명 ‘못해도 된다.’라고 꼬드겼음에도 불구하고 실축을 할 때면 온갖 욕지거리를 들어야했다. 안정환 선수가 전 국민에게 들었을 한탄이 어땠는지는 생각도 안 들었고, 그저 그 순간이 너무 짜증나고 치욕스러웠던 기억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축구를 싫어하게 됐다. 지금도 국제 경기나 몇몇 유명한 더비들은 보기는 하지만, 열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운동장의 흙바람을 만들어내던 아이들 사이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유행이 불어온 것은 2002 월드컵이 끝난 뒤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즐기던 아이들은 갑자기 거대한 원을 만들고, 두 명의 파이터들을 그 원 안 집어넣고 싸움을 바라보는 놀이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마침 WWE 레슬링이 유행하기는 했으나 그 싸움은 레슬링과는 달랐다.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합을 짠 발차기와 주먹이 오갔다. 스치면 서로 치명타를 입을 만한 타격들이었지만 절대로 상대를 ‘진짜’ 가격하면 안 되는 놀이. 바로 <야인시대> 놀이였다. 그리고 그 놀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SBS <야인시대>였다.


<야인시대>는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김좌진의 아들이자, 일제강점기 서울 종로를 주름 잡았던 깡패이자, 해방 후 한국의 정치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두한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다. <야인시대>하면 떠오르는 단상들이 있다. 김두한(안재모 분)을 일본말로 부르던 긴또깡부터, 그 이름을 늘 불러댔던 미와(이재용 분), 갑자기 뒤를 돌더니 ‘4딸라 아저씨’ 김두한(김영철 분)으로 변해버린 역변 등이다. 이외에도 심영(김영인 분)이 외친 “내가 고자라니.” 밈, 우미관, 장군의 아들 등이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하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을 다 채울 것 같아 참겠다.


“내가 고자라니.” 밈 덕분에 <야인시대>는 지금의 세대에게도 익숙한 드라마다. 덕분에 지금의 <야인시대>는 대개 유머로 승화되지만 방영될 당시 <야인시대>는 이런 웃음으로 치부가 된 드라마가 아니었다. 격정의 시대 속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주먹의 세계로 뛰어드는 한 청년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펼쳐졌으니, 한일 월드컵을 마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한 ‘국뽕’을 말아 줬겠는가.


한 마디로 <야인시대>는 민족의 자긍심이 끓어오르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당시 어른들은 <야인시대>를 보면서 조폭을 미화하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TV 앞에 앉아 <야인시대>를 감상했다. 특히 김두한이 우미관 앞에서 구마적(이원종 분)과 싸움을 벌일 때는, 모든 집안이 그렇겠지만 아버지들도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을 TV를 지켜봤다.


<야인시대>는 세 가지 파트로 나뉜다. 곽정욱이 그리는 김두한의 유년 시절, 안재모가 연기하는 청년 시절, 김영철이 펼치는 중년 시절의 이야기다. 유년 시절 김두한은 수표교 거지촌에 살면서도 자신이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을 품고 있다. 이후 청년 시절, 본격적인 깡패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이 자긍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중년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하겠다는 생각이나, 그렇게 시작한 주먹 생활에서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과 주먹다짐을 한 김두한의 이야기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실제 김두한이 주장하던 이야기니 뭐 어쩌겠는가. 또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세력을 규합해야 했다는 명분이 있기에 어벌쩡 넘어가본다.


김두한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건 바로 김좌진이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을 품게 해주는 기제인데, 사실 김두한은 그 자긍심을 가지게 만든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드라마에서는 김두한이 아쉽게 독립운동가가 되지 못해 깡패가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깡패가 된 뒤, 다양한 주먹들을 쓰러뜨리고 종로의 오야붕(대장)이 되는 걸 보면 애초에 그는 깡패가 더 적성에 잘 맞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나는 <야인시대>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Cap 2022-10-14 16-35-26-697-vert.jpg SBS <야인시대>

극 중 김두한의 집안 어르신들은 그가 깡패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크게 낙담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독립운동가의 자식이 깡패가 됐다니. 그것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의 아들이! 김두한은 이런 집안 어르신들의 낙담 속에서 오는 환멸의 시선과 깡패가 된 자신의 현실, 또 자기가 가진 이상의 괴리 속에서 고통 받는다. 나라를 일제에서 해방시키는 데에 일조하는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겨우 종로의 실권을 두고 주먹다짐을 하는 자신이 얼마나 싫었을까. 그래서 김두한은 “나도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그 답답함을 다른 깡패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것으로 풀어버린다.


주먹의 세상에서 나와 중년이 된 김두한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에서의 해방 후 김두한은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던 인생에서 대중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하는 인물로 변화한다. 아마 이제 그는 미국의 휘하에서 완벽하게 독립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크게 낙담한 듯했다. 하지만 김두한의 정치 방식은 깡패 시절과 다를 바 없다. 노동자 임금을 2달러로 하자는 미군에게 4달러로 올리라고 겁박(드라마에서는 협상이라고 말한다)하거나,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다루고 있던 국회에 똥물을 투척하는 방식이다.


이런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방식은 김좌진이 일본군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삶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두한은 아버지의 정신을 계속 강조한다. 도대체 김두한이 생각한 김좌진의 정신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는 몇 번 만난 적도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불확실한 사명감에 파묻혀서 살아간다.


<야인시대>는 김두한의 삶 외에도 교과서에서 딱딱하게 배우던 근현대사를 꽤 재밌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세대에게 추천할 만한 드라마다. 1940년 8월 10일, 조선총독부의 강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는 사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으며, 해방 후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인 대립이 이어졌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도 잘 살아있다. 김영철 배우가 연기하는 중년의 김두한부터는 특히나 정치 깡패와 같은 사건을 비롯해 당시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연출들이 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사실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에 보고도 서른한 살이 되어 다시 봤는데, 이때는 김두한의 청년시절보다 중년시절을 더 재밌게 봤다. 아무래도 그 당시의 정치 이야기가 나의 구미에 더 맞았기 때문일 터다. 또한 당시의 좌우대립을 보면서 여전히 그와 비슷한 것을 두고 싸우고 있는 작금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었다. 아니, 씁쓸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2002년의 풍경부터 시작해 김두한의 삶, 그리고 다시 드라마를 시청한 현재의 감정들을 끌어오면서 <야인시대>를 설명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당시의 근현대사가 여전히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는 불편함 때문이다.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남긴 ‘장군의 아들’이라는 유산과 늘 싸우면서 자신의 깡패 길을 걸어간다. 그러면서도 김좌진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인 삶을 산다.


열한 살의 나는 <야인시대>를 보고 민족의 자긍심을 느꼈지만, 지금의 나는 이 양가적인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가지는 나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근현대사가 남긴 위대한 정신과 또 그 시대가 남긴 어두운 면면과 싸우고 있다고 본다. 역사를 단순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 양극단 중 하나로 규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어디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지 않나.


김두한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해 싸운다. 종로의 오야붕이 됐음에도, 야쿠자들과 주먹을 다툰다. 이후에는 미군 병사와 권투 시합을 펼치기도 한다.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죽음을 맞을 때까지도, 그의 싸움은 계속된다. 그의 외로운 싸움이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일제와 미국에 항거하는 정신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그저 싸움 좋아하는 낭인의 모습으로 읽히는 것처럼, 삶은 늘 양가적이다.


김두한이 죽은 뒤 다시 하늘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 김좌진은 어떻게 아들의 삶을 평가했을까. 만약 김두한이 아버지에게 “저도 아버지처럼 늘 싸우고 다녔습니다.”라고 했다고 치자, 내가 김좌진이었다면 “이 놈아, 내가 싸우라고 한 건 그게 아니야.”라고 말했을 법 하다. 하지만 김두한의 입장에서는 분명 ‘항거’의 정신을 가슴 속에 되새겼을 뿐이라고 하지 않겠나. 그래도 김두한은 좌절하지 않고 “저는 그래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도 노력했습니다.”라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고백을 했을 거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이 상상까지 닿자 나는 앞선 세대가 남긴 정신을 오독하는 현재도 있고, 앞선 세대가 남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는 현재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2002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들이 만든 신화가 너무나 거대한 나머지, 이후 축구 국가대표들이 아쉬운 성적을 낼 때마다 지탄 받아야 했던 일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앞선 세대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김두한은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깡패가 되고, 그 깡패가 정치가가 됐다는 ‘엄청나게 새로운 역사’를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을 듯하다. 김두한이야말로, 구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라는 거다.


혹시나 말해두는 건데, 이걸 깡패 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지금은 <야인시대>처럼 주먹으로 뭘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김두한의 역사는 김두한의 삶에서 끊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시대가 만들어낸 암울한 역사의 잔재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이미 김두한의 인생이 제시해줬다고 생각한다. 김두한이 구시대의 후광과 암울한 역사에 ‘항거’했다면, 이제 우리가 그 시대에 항거해야 한다. 아이러니할 수도 있지만 김좌진이 김두한에게 물려준 ‘항거의 정신’을 유산으로 삼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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