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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은 돌아오는 거야, <천국의 계단>(2003)

by 안태현

열두 살의 나는 항상 꼬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아마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사춘기가 일찍 온 것이리라. 그러나 꼬인 사고를 가졌던 내게는 ‘평균’이라는 것도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평균의 삶’이란 무엇일까를 늘 고민했다. 그 시기의 나는 학교 공부를 ‘평균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과연 평균의 성적은 어떤 것인지, 평균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늘 머릿속에 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의 영향도 컸다. 그 시기 나는 왕자님과 공주님이 나오는 동화책보다는 존 그리샴의 소설 《의뢰인》을 더 재밌게 읽고 있었다. 이 소설은 젊은 시절 어머니에게 친구가 선물한 책. 그 속지에는 ‘밝은 날의 언젠가 OO가’라는 편지 같은 문구도 적혀있다. 지금은 완전히 낡은 책이 되어버려서 앞표지가 뜯겨 나갔지만, 여전히 그 문구가 적힌 속지만은 남아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이란, 열한 살 소년 마크가 동생 리키와 함께 담배를 피우러 숲에 들어갔다가 한 변호사의 극단적인 선택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정도 되겠다. 열두 살 아이가 읽기에는 버거웠지만, 변호사가 차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이외에도 그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들은 열두 살이 읽기에는 부적절한 것들이 많았다. 또 생각나는 걸 끄집어내보자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다. 이것도 지금 고향집의 책장에 《의뢰인》과 세트로 꽂혀서 내 어린 날, 때 이른 사춘기의 증거물품 1호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건, 어린 시기에 어떤 콘텐츠를 접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내가 열두 살 때, ‘평균적’으로 접하는 디즈니 만화나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 찬 동화들을 많이 읽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도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역사에 만약은 없기에 이런 내 개인의 역사에도 가정법을 쓰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책만큼이나 이 시기 내게 큰 영향을 줬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로 SBS <천국의 계단>이다. 제목은 <천국의 계단>이지만 전혀 이 드라마의 내용은 천국으로 향하지 않는다. 지금은 ‘막장드라마’라는 것이 평범한 드라마의 장르가 됐지만, <천국의 계단>은 막장드라마라는 개념이 잡히지 않았을 때 이를 공격적인 자세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미 존 그리샴의 《의뢰인》으로 인생의 쓴 맛을 알게 된 내 인생에게도 큰 혼란을 준 작품이니, 어떤 막장이었는지를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차송주(권상우 분), 한정서(최지우 분), 한태화(신현준 분), 한유리(김태희 분) 되시겠다. “떵서야, 한떵서.”라는 게 익숙하신 분들. 맞다, 그 한정서 나온 드라마다. 아직도 OST가 귓가에서 맴도는데 ‘아베 마리아’라는 곡이다. 극 중 서울 롯데월드에서 주인공들이 놀이기구를 타거나, 달리기를 할 때 꼭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왔다. 꽤 장엄한 분위기의 곡이기도 한데, <천국의 계단>하면 무조건 그 노래가 먼저 연상이 된다. 그래서 내용이 뭐냐고? 굳이 내 글에서까지 이 막장 스토리를 읊어야하나 싶은데, 안 본 사람도 여럿 될 터이니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번 언급해보겠다.


내용은 막장드라마니 뻔하다. 차송주와 한정서가 사랑을 하고, 거기에 또 출생의 비밀이 얽혀있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죽는 게 그려지는 이야기다. 여기에 어린 날의 한태화 역을 맡은 이완이 롯데월드의 회전목마 주변을 신나게 돌다가 ‘스웨덴의 사자’ 신현준으로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장면도 막장 요소에 박차를 가하는 부분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이니, 신현준 배우가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란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꾸벅.


이 드라마에서 가장 유명했던 대사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였다. 차송주가 한정서와 헤어지고 나서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에서 부메랑을 던지면서 치는 대사인데, 이게 그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정말 아스트랄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사람들을 설레게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막장 같은 스토리를 보는 것보다 설렘을 배가 시키는 차송주의 대사들에 더욱 집중했기 때문에 <천국의 계단>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드라마에서는 그 부메랑처럼 정말 차송주에게 한정서가 돌아왔기에, 부메랑을 던지면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를 외치는 건 마치 과학적으로 입증된 기우제처럼 사람들에게 느껴졌을 거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괜히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제로도 벌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한정서가 차송주에게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제발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을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갑작스럽게 한정서에게 시한부 인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작가가 한정서의 친오빠인지 알았던 한태화가 사실, 친오빠가 아니었다는 설정을 정말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여주인공을 죽여 버리기로 작정했다. 이 정도의 괴팍함을 지녔기에 한태화도 안암 탓에 시력을 잃은 한정서에게 눈을 기증하기 위해, 손으로 눈을 가리고 교통사고를 내며 죽어버리는 막장 전개가 가능했겠지.

SBS '천국의 계단'


하여튼 이 막장 전개 속에서 피어난 한태화의 자기 희생 정신 덕분에 한정서는 시력을 되찾는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하기에는 금물이다. 주 촬영지가 롯데월드여서 그랬는지 <천국의 계단>은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처럼 시종일관 자극적인 전개들이 이어진다. 바로 겨우 시력을 되찾은 한정서의 안암이 재발해버린 것. 작가가 안암을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걸 보면 아마 고려대학교 출신이 아닐까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게 작가는 한정서가 천국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지체없이 걸어가는 걸 표현하기 위해 제목도 <천국의 계단>으로 지은 것일까. 차라리 <천국의 에스컬레이터>였다면 한정서도 그렇게 고생하면서 죽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이 막장이니 내가 이런 발언까지 하게 된다. 역시 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보는가가 인격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게 그 사례지 않나.


마지막 장면은 떠나간 한정서를 추억하면서 바닷가에서 피아노를 치는 차송주의 모습이다. 결국 사랑하던 사람은 떠나갔지만, 시청률은 높여 놨다. 그의 구슬픈 모습을 보면서 뭇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그랬다. 혼자 남은 차송주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애절한 사랑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근데 30대가 되어버린 지금 돌아보니 그 애절한 사랑을 만든 상황 설정이 문제였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역경을 준다면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돌아봐야 한다. 근데 그 때는 어렸기에 일단 눈물부터 훔치고 봤다. 그런데 꼬인 사고 회로를 가진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런 상상을 했었다. ‘과연 차송주가 한정서를 떠나보내고 평생 혼자로 살았을까’다.


내 상상 속 차송주는 한정서를 떠나보낸 후 얼마간은 꽤 힘들게 살았었다. 하지만 약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차송주는 또 다른 여자를 생각하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쳤을 것이다. 같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이면 소름이 돋으니깐 에버랜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진짜 열두 살 소년이 이런 상상을 했다고? 어느 정도의 각색은 들어갔지만, 정말 나는 <천국의 계단>을 보고 나서 차송주는 평생 혼자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고 회로의 흔적이 내 기억 속에 꽤 강인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과연 이게 진짜인지 혹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기억과 그 당시의 기억이 혼합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는 확실하게 말 못하겠다. 그러나 정말 확실한 건,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거다.


사실 인생은 막장 드라마 보다 더 막장이다. 지난 2017년 중국의 한 남성은 아내가 2년 간의 폐암 투병으로 힘들어하자 시간이 흐르면 암 치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아내를 중국 최초의 냉동인간으로 만들었다. 계획대로라면 남자의 아내는 냉동인간이 되고 50년이 지난 2067년에 잠에서 깨어날 것이었다. 그렇게 2067년까지 변하지 않을 사랑을 약속한 것만 같았던 이 남성은 아내가 냉동인간이 되고 4년 만에 새 연인을 만났다. 실제 사례다. 완전히 감동이 바사삭 부서지지 않는가. ‘에이 중국 이야기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한반도에서도 막장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도박빚 때문에 어머니와 친형을 살해한 이야기부터 더 가까이 수없이 생겨나는 불륜 커플 등, 막장 같은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 당장 데이트 폭력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굳이 막장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열두 살 소년이 저런 상상을 했다는 것도 참 기가 찰 노릇의 막장 같은 상황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니 내 과거의 인생이 꽤나 슬퍼지는데 어떡하겠나, 그 과거도 나인 것을.


지금도 TV를 틀면 여전히 막장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막장 같은 사건들도 매일 벌어지고 있다. 유독 막장드라마가 한국에서 많이 쏟아지는 이유는, 이런 한국의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막장드라마가 한국의 상황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같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렇지만 답을 내릴 수 없다. 답을 내리려면 <천국의 계단> 이후 등장한 수많은 막장 드라마들을 시청해야 할 터다. 하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그런 혹독한 시련은 선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런 나와 달리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은 강인했다. 아직까지도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이거 완전 막장이네.”라고 말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다. 참 막장 같은 상황이다. 그걸 시청하고 있는 부모님이나 어른 곁에서 같이 그 드라마들을 소비하고 있을 어린 시청자들이 다소 걱정되기도 한다. 살인 사건이 쏟아지는 소설들을 읽고, 막장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고 성장한 나이기에 과연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굳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TV 전원을 갑자기 차단해서 드라마 시청자들의 폭력성을 증명하겠다는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콘텐츠가 어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가 이미 증명해냈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나 같은 경우는 막장 드라마나 살인 사건이 쏟아지는 소설 외에도 희망이 넘치는 이야기가 가득 찬 콘텐츠들도 많이 접하면서 좋은 심리 치료가 됐다.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고 난 뒤에, 갑자기 상대방이 죽는 것을 보는 드라마보다는 어떻게든 사랑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같은 것들. 혹은 만약 주인공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비장한 죽음 보다 끝까지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의 부류들.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정말 사랑이 끝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들도 많이 봤다. 물론, 지금도 머리 어딘가에서는 막장 같은 사고 회로들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최대한 억제하려고 하는 행복 회로들이 많아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트라우마는 남아있다. 존 그리샴의 《의뢰인》 속 극단적 선택 장면을 읽고 나서는 그런 부류의 장면 묘사가 나오는 콘텐츠를 보면 괜히 불쾌함이 커진다. 그래서 눈을 돌리거나 다른 상상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또한 막장 드라마들을 보면 내가 어떤 사고를 할 것인지가 예측이 돼서 굳이 보려하지 않는다. 일적으로 드라마를 봐야할 때면, 그런 드라마들에는 최대한 흥미를 가지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지 않으면 괜히 막장 드라마에 내가 먹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해야 한다. 막장 드라마도 장르의 한 축으로 꼭 필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든가, 이런 막장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적인 목표라든가 말이다. 근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소위 막장의 필수요소들인 출생의 비밀, 불륜, 무자비한 죽임 등을 합당한 스토리에 녹이면 막장 드라마가 되지 않듯이, 중요한 건 어떻게 이야기를 푸는가다. 막장 같은 상황들도 막장 드라마로 만들어내지 않을 정상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그래도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원동력을 가지지 않을까. 드라마를 통해 삶을 배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그 사람이 막장 드라마의 스토리에 먹혀서 괴물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그러니깐 작가님들, 부메랑처럼 막장 같은 상황이 돌아올 막장 드라마 보다는 조금 '천국' 같은 세상이 돌아올 드라마도 만드는 건 어떨까요. <천국의 계단> 같은 건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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