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오늘

by 안태현

1년 전부터 떠오르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던 그림의 작가 이름이었는데, 그림 제목도 까먹었습니다. 대학 시절에 그 그림을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하고 지내기도 했는데, 갑자기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함 그 자체였습니다. 일단 잊고 지내면, 언젠가는 떠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젯밤 친구가 하는 가게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우연치 않게 그 그림을 보게 됐습니다. “아 맞다! 에드워드 호퍼!”라고 소리 쳤습니다. 또 까먹을까봐 급하게 메모까지 해두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의 그림 <아침 해>(Morning Sun)를 뭔가 다시 되찾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차오른 홀리한 기분이 제대로 뇌를 자극한 모양이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는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입안에서 음이 구르는데 가사도 제대로 생각 안 나고 그냥 음만 흥얼거렸습니다. 분명 좋은 노래인데, 이걸 내가 그냥 떠올린 거면 당장 작곡가로 데뷔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성곡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답답함만 안고 있었습니다. 노래 제목을 기억해낸 것은 이틀 전 밤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흥얼거리던 음에 딱 맞는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그게 제목이었습니다. 노래는 핑크(Pink)의 ‘저스트 기브 미 어 리즌’(Just Give Me A Reason)입니다. 또 까먹지 않기 위해서 카카오톡 메신저의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해놓고, 따로 메모도 해두었습니다.


저는 늘 기억을 붙들고 삽니다. 힘들었던 기억, 슬펐던 기억 등도 굳이 잊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을 했다는 의미고, 슬펐던 기억은 그 전에 그만큼 행복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기억들을 지우면 그를 통해 성장했던 기억도,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들도 사라질 것 같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애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굳이 부정하는 건, 굳이 긍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 기억들이 항상 붙잡혀 있는 건 아닙니다. 잊고 살았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핑크의 노래처럼 말입니다.


어젯밤에 메모를 썼다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고 싶었던 말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중2병 말기 환자 같아서 곧바로 지웠습니다.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깐 하고 싶었던 말의 앞글자만 떼서 쓴 것 같네요. “결국을 결코로 바꾸는 건 마지막을 마침내로 가게 만드는 일, 그랬어야는 그렇기에로 생각해야 만약과 이별할 수 있는 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글로 옮기면서 손가락이 오그라져서 오타를 고치느라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메모했던 이유는 알겠습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의도대로 바꿔보자면 이렇습니다 “‘결국 이렇게 됐다’라는 생각을 ‘그런데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지’라고 바꿔야 한다. 그건 이 일의 끝을 ‘마침내 해냈다’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랬어야 했는데’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나는 나아가겠다’라고 되새겨야 만약이라는 미련과 이별하고 정말 사랑하는 기억을 남기는 게 아닐까.” 풀어써도 여전히 오글거리지만, 제 인생관과 딱 결부되어 있어서 이 글로 옮겨왔습니다.


정말 사랑으로 남긴 기억들은 잊고 살다가 갑자기 떠올라도 소위 ‘이불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그 기억들을 잊고 살다가 다시 떠올렸을 때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각인됩니다. 덕분에 지금도 핑크의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핑크의 노래는 제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 해>는 이 글의 배경 사진으로 쓰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기억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인생 곡과 그림이 탄생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기억 저편에서도 행복한 기억들이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노래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사람 혹은 사건이 되었든. 그리고 그 기억의 강렬한 감정으로 둘러싸여 행복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아나요. 갑자기 떠오른 노래가 오늘 내 인생의 멋진 BGM이 될지. 그렇게 오늘도 최고의 명장면들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명장면들이 차곡차곡 기억 속에 남겨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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