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동안은 잠시 체력 충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적인 소모도 너무 컸고, 신춘문예를 준비한다고 소설을 쓰면서 체력을 너무 방전시켰습니다. 그래서 잠시 세상에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생활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침대 위를 유영했습니다. 이전에 글 쓰는 것과 사람들의 감정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을 잠시 중단하고 살았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체력적인 부분과 심적인 부분의 부담이 컸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속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 밥을 굶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몸과 마음도 보신할 겸,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자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그렇지만 입니다만 음악도 음악 나름이었습니다.
하루는 콜드플레이의 정규 2집 ‘어 러시 오브 블러드 더 헤드'(A Rush of Blood the Head)를 들었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면 앨범 하나를 정독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발매된 지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명반은 명반입니다. 그러니깐, 사람 마음 후벼 파는 데는 도가 튼 최고의 명반입니다. 첫 번째 수록곡 '폴리틱'(Politik)을 들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무너지더니 '인 마이 플레이스'(In My Place)에서는 아예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궁상맞은 기분이 들 때는 더욱 더 궁상을 떨어야 합니다. 과거 흠모하면서 읽었던 김태서 평론가의 그 유명한 앨범 리뷰를 다시 읽었습니다. ‘궁상은 궁상을 부른다’라는 첫 문장부터 아주 가슴을 후벼 팝니다. 이 분도 이 리뷰를 쓸 당시에 정말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삶은 우리의 인생에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던져 놓는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이 떠 안은 문제들을 마주하며, 그것을 온전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나갈 만큼 강한 인간은 흔치 않다. 그러나 결국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든, 혼자 벽을 보며 훌쩍이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사실 역시 알고 있다,”라는 문장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역시 찌질함은 또 다른 찌질함에 위로 받습니다. 과거에 읽었을 때는, 참 문장 잘 썼다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역시 명반에 딱 맞는 명리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참해진 마음을 안고 바로 로드(Lorde)에게 뛰어갔습니다. 2017년에 발매된 정규 2집 '멜로드라마'(Melodrama)입니다. 앨범 제목부터 느껴지는 멜랑꼴리한 감정은 수록곡을 들으면서 더욱 깊어집니다. 오랜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난 뒤의 감정들을 풀어낸 앨범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하드 필링스/러브리스'(Hard Feelings/Loveless)입니다. 이별을 겪었거나 이별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 어서 오세요, 여기 최고의 곡이 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뜨거운 감정이 솟아오릅니다. 뜨거운 우울의 감정입니다. 아마 20년 전 콜드플레이와 이별을 한 로드가 만났다면, 시대를 뛰어넘은 명반이 태어났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쓰고 있지만, 두 앨범을 들을 때 참 많이 아팠습니다. 여기에 LP의 앨범, fka 트윅스(fka twiggs)의 앨범까지 들으니 궁상 그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꾹 참고 참았습니다. 원래 우울할 때는 가장 밑바닥까지 찍고 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추락한다는 건 그동안 내가 쌓아온 감정들이 무엇인지를 훑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야 다시 어떻게 쌓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몸무게를 재보니 2달 전과 비교해 9kg이나 빠졌습니다. 일주일동안 회복은커녕 더 우울의 늪에 빠져있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살 빠진 저를 보고 ‘보기 좋아졌다’라고 하는데,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완전히 밑바닥 상태에서 이제 올라가려 합니다. 또 무엇들이 쌓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저의 궁상을 책임졌던 콜드플레이와 로드, LP, fka 트윅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참 좋아했던 형을 오랜만에 만나고 왔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형은 말이 없었지만, 조용히 국화 하나 두고 ‘고마웠다’라고 얘기하고 왔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형이 저한테 미안해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형과 함께한 그 추억 잘 안고 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문장을 이어갑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겼던 음악들을 모두 갈아 엎어치웠습니다. 일단 비숍 브릭스의 노래들을 채워 넣었습니다. 신촌 골목의 카페에서 그녀의 '챔피언'(Champion), '더 웨이 아이 두'(The Way I Do), '리버'(River)를 연달아 들으면서 경쾌하게 타자를 칩니다. 어떻게든 쓰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어찌됐건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그동안 안 나오던 문장들이 쏟아집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처럼 잘 쓰고, 잘 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이 순간 저의 이어폰에서는 맥클모어의 '챈트'(CHANT)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맥클모어가 얘기합니다. “계속 뛰고 난 싸울 거야, 계속 꿈을 꾸고 절대 좌절에 안주하지 않을 거야.(Play on player I gotta keep competing. Keep dreaming won't settle for s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