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안경을 벗고 일상을 지냈습니다.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극심한 근시를 가지고 있어서 가까이 있는 물체는 잘 보이지만 멀리 있는 것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물체가 약 20cm만 멀어져도 형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편입니다. 안경을 벗고 다닌 덕분에, 안경을 쓰고 다녔던 15년의 세월 동안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잘못 누르는 건 기본이었고, 지하철의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안경을 쓰지 않은 건, 가끔 세상을 너무 또렷하게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흐리게 바라보면서 느낀 가장 큰 게 있습니다. 멀리 멀어져도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흐릿하지만 그곳에 항상 존재한다는 확실한 믿음이 드는 형체들이었습니다. 잠실을 지나면서 봤던 롯데타워가 그중 하나였고, 청계천에서 지표가 됐던 종로타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깐 정말 거대한 존재들은 저 멀리에서도 형체가 단단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대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까이에서는 그냥 그저 그런 존재로만 생각됐는데, 멀어지니깐 보이는 정말 거대한 존재들입니다.
사람 역시 거대한 존재가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도 같은 마음으로 존재할 것 같은 인물입니다. 주변에 그런 거대한 존재 같은 사람이 몇 있지만, 제게 가장 거대한 존재는 바로 우리 아버지입니다.
항상 누군가가 저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얘기해왔습니다. 이게 효자 코스프레도 아니고 정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아버지의 키가 크거나 덩치가 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제게 아버지는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거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세상에 나서서, 그 힘으로 나머지 세 가족을 받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고된 티는 절대 내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바라봤을 때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게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버텼을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가끔 발작적으로 튀어나오는 저의 장난기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값진 것입니다. 일화가 있다면, 누나가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아버지와 도로연수를 나선 때입니다. 저는 뒷자리에 타고 함께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운전 중에 무슨 일이 날지 모르니 시험을 해 본 것'이랍니다. 위험한 장난이었지만, 어이없는 실소가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글에서는 아버지라고 쓰고 있지만, 저는 항상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라고 호칭하면 큰 벽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역시 격 없이 저를 대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혼이 났던 경험은 별로 없었습니다. 체벌 역시 받아본 적 없습니다. 그렇다고 관심이 덜한 게 아니었습니다. 늘 조언해주고, 그럴 때도 나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대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20대 초반 정치적 견해가 엇갈려서 서로 많이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아버지는 쏘아대는 것이 아닌 설득을 하려 했습니다. 제가 언쟁이나 싸움을 줄이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큽니다.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에게 연락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학업과 일을 위해 객지에 나와 산 지 오래돼서 찾아 뵙는 일도 뜸합니다. 가끔 전화로 나누는 대화는 참 무뚝뚝합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등의 이야기입니다. 밥은 잘 챙겨 먹지 않고 다니고, 결혼도 아직 할 생각은 없어서 화제를 돌리기 바쁩니다. 경상도 남자들이라서 무뚝뚝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끔 영상통화를 할 때면 늘어나는 흰머리와 세월의 칼날이 베어낸 흉터들이 더 깊어진다는 걸 느낍니다. 어느새 거대한 존재가 왜소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점점 고향에 내려가기가 부담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들이 있고, 부모님도 있고, 귀여운 조카도 있지만 고향에 내려갔다 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영화 <변산>에서 학수(박정민 분)가 하는 말처럼 ‘금의환향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큰 꿈을 꾸고 객지로 나왔지만, 아직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원래의 꿈은 포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든 내려오라고 하지만, 고향을 내려갔다 오면 그 콤플렉스와 향수병이 너무 심해져서 며칠을 끙끙 앓습니다. 부모님에게 내색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편하게 내려오라’는 말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몸살이 심해집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라는 거대한 존재는 항상 그곳에 있음을 압니다. <변산> 속 학수는 저와 달리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그들의 관계가 내 마음을 항상 후벼 파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아버지는 거대하게 내 삶 속에 파고들어 와 있다는 감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직 아버지에게 물려받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거대한 존재가 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점점 왜소해지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늘어납니다. 제발 그 거대한 존재가 형체를 잃어가지 않았으면 바라는 마음이 커집니다. 그래야 저 역시 누군가에게 거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고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하면 간지럼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글로 써두려 합니다. 휘발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을 이 글에 이렇게 남겨두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내 거대한 존재,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