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서 마주하기

by 안태현

아무 이유 없이 한숨만 늘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도 참 열심히 일상을 살았다고, 참 잘 버텼다고, 지난날이 참 즐거웠다고 생각했지만 밀려오는 한숨들이 계속 날숨을 채우는 때입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그렇게 새어 나오는 한숨을 내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켜 봤습니다. 하지만 다시 나오는 건 힘없는 날숨뿐입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청소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비우는 작업부터입니다.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재활용을 해야 할 것들을 선별합니다. 물건들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싱크대 옆에 쌓인 소주병들과 맥주 캔들을 가장 먼저 처리했습니다. 삶의 중력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봅니다. ‘언제 이렇게 마셨나’ 싶습니다. 불면증이 다시 도져서 자기 전에 조금씩 마셨는데, 그게 이만큼이나 쌓였구나 싶습니다. 주말에는 좀 많이 마셨으니 수긍도 갑니다.


쓰지 않았던 물건들도 버립니다. 손때가 묻지 않고, 먼지만 쌓였던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물건들에 얽힌 일화들도 생각이 납니다. 이건 꼭 남겨둬야지 싶지만 제 생각으로 남겨두면 된다고 생각하고, 쓰레기 바구니로 자리를 옮깁니다. 조금씩 청소에 열중하게 되니 한숨에 대한 생각은 사라집니다. 정말 청소는 내 인생 최고의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평소에 자주 쓰던 것들은 걸레로 깨끗이 닦아냅니다. 이후에는 일상의 흔적들이 묻은 가구들을 닦습니다.


걸레질을 끝내고는 묵묵하게 이불을 챙겨 근처 빨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이불 세탁을 돌려놓고 휴대폰의 타이머를 세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둡니다. 다시 집으로 향해 바닥을 닦습니다. 바닥을 닦은 후에는 청소기를 꺼내 듭니다. 걸레질이 끝나고 난 뒤, 남은 흡착먼지들을 청소기로 말끔하게 빨아들입니다. 그런 다음, 카펫용 노즐로 바꿔 끼운 뒤 카펫의 먼지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합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청소기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봅니다. 보통 때보다는 흡입력이 약해졌음을 소리로 짐작하고는 먼지 통 청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카펫 청소까지 끝내니, 휴대폰의 알람이 울려댑니다. 다시 빨래방에 가서 세탁을 마친 이불을 건조기에 집어넣고 집으로 향합니다. 건조를 마치는 40분 뒤로 타이머를 맞추는 일은 매끄럽습니다. 집에 다시 돌아와 청소기의 먼지 통을 비우고, 필터들을 다 분해해 물로 깨끗이 헹궈냅니다. 젖은 필터는 창가에 올려두고, 아까 썼던 걸레들을 빱니다. 일단 맑은 물로 걸레에 묻은 먼지들을 빨고, 중성세제를 넣어서 주물럭댑니다. 몇 번 주물럭대고는 불림 작업을 위해서 그대로 둡니다.


먼지를 닦은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입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아까 버리지 못한 것 중에 또 버릴만한 것들이 있어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어느새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꽉 찼네요. 이때까지 미련처럼 가지고 있던 것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습니다. 불림 작업이 끝난 걸레를 헹구고 건조대에 걸어줍니다. ‘자 이제 청소는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지만, 건조가 끝났음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이 울립니다. 다시 빨래방에 가서 이불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불은 매트리스 커버부터 침대에 씌우고, 패드를 깐 다음, 덮는 이불을 개면서 정리를 끝냈습니다. 베개 커버도 깨끗하게 갈아줍니다.


청소가 끝났으니,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의자에 앉아봅니다. 생각을 잘 비웠네요. 그렇게 컴퓨터를 켜고 이 글을 남겼습니다. 다시 써둔 글을 퇴고하고 있는 지금은 하루가 지난 월요일의 저녁입니다. 글을 보면서 잘 비워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 비워내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뭔가 모를 한숨의 기운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릅니다. 그래도 ‘한숨을 쉬는 이유’를 찾는 마음은 비워냈습니다. 일단 다시 일상의 흔적들을 집안에 쌓아가다 보면 다음 명상을 위한 청소 때, 그 이유에 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정리한 싱크대 옆에 또 술병을 쌓는 일은 줄이려고 해봅니다. 다른 방식으로 버티는 방법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내일 또 청소를 할지 모르겠네요. 이게 앞으로 쌓아갈 삶의 흔적들에 대한 매일의 발악일지라도, 청소를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삶의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워내면서 마주하는 감정들과 흔적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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