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며 믿기

by 안태현

사람마다 사랑하는 영화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최동훈 감독의 <타짜>,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정말 좋아합니다. 각각 한 50번씩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들의 대사는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을 지경이 됐습니다. 영화의 쇼트 뒤에 어떤 쇼트가 붙는지도 압니다. 그런데도 다시 보는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영화들의 장면, 소리가 주는 온도, 습도, 풍겨오는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서 입니다.


지금은 또 <사바하>를 틀어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침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웅재(이정재 분)는 조수이자 전도사인 고요셉(이다윗 분)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고요셉의 말에 박웅재는 "우리는 저 밑바닥에서 개미들처럼 지지고 볶고 있는데 도대체 우리 하나님은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시는지"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이 대사는 <사바하>가 드러내고 있는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의심과 믿음의 문제입니다. 저는 완벽한 믿음을 늘 견제합니다. 의심을 해야지 그것이 믿음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늘 제 의심의 화두입니다. 존재를 의심할수록, 존재했다는 명제는 확신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절을 믿지는 않습니다. 끝없이 의심하면서 읽었던 게 성경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믿음은 더 확고해졌습니다. 성당은 가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신을 믿는 것과 사람을 믿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성경 속 예수도 흔들리고 고뇌하는 때가 많습니다. 신인 그도 그럴 것인데, 사람은 얼마나 더 많이 흔들리고 고뇌할까요. 그렇기에 사람을 믿을 때는 의심이 더욱 커지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의심은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감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찰하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진짜'가 맞을까 생각하려 합니다.


대개의 경우는 감정의 변화들 속에서 '진짜'와 '가짜'가 판별됩니다. 감정이 변화되지 않을 때 그건 '진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감정이 변할 때면 그건 '가짜'에 가까웠습니다. 감정은 변하지 않고 상황이 변할 때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면 '진짜'였던 감정들을 지속하게 두고 상황의 변화에 맞춰 살아갑니다.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믿음'이라는 것이 확고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역시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견지하려 합니다.


많은 순간 '가짜' 감정들과도 싸워가고 있습니다. 가끔 밀려오는 우울감, 화, 답답함 등이 그것들입니다. 불교의 철학들을 통해 이들과 싸우는 방법을 배우려 했지만, 배우지 못했습니다. 불교는 싸우기 보다 포용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포용하며 살려고 합니다. 항상 싸우려 하면 쉽게 놓아주지 못하더라고요. 오히려 포용하면 놓기가 편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가짜' 감정들은 그냥 편하게 둡니다. 그러면 빨리 제 갈 길을 찾아 가더라구요.


갑자기 종교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튀어나온 이유는 <사바하>가 풍기고 있는 아우라 덕분입니다. 이 영화는 늘 제가 의심하고 사는 삶에 회한을 느낄 때, 위로를 전합니다. 공포,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에서 위로를 받는다니 어색한 조합이기는 하지만 제게는 어쩌면 최고의 궁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박웅재가 '진짜' 김제석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점없는 '진짜'를 너무 믿었던 나머지, '가짜'가 되어버린 김제석을 만날 겁니다. 참 많은 생각을 주는 영화네요. 이게 아마 다시 감상을 할 생각을 하면 늘 설레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영화 <사바하>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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