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가끔씩 "왜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합니다. 늘 예기치 않은 순간에 튀어나옵니다. 그러면 준비된 대답들이 있습니다. "영화를 하다 보니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든가, "배운 게 미디어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좇아 왔습니다"라는 대답입니다. 하지만 진짜 내 생각은 뭔지 몰랐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영화기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화기자가 어떤 직업인지 몰랐지만, 얼떨결에 취업을 했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곁눈질로 배운 미디어에 대한 지식으로 일단 부딪혀봤습니다. 그런데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건 즐겼지만, 가요를 듣고, 드라마를 여러개 챙겨 보는 걸 썩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콘텐츠에 대한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는 데에 힘이 달린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니 '과연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고민은 접어두고 '이왕 시작한 것, 끝이라도 보자'라는 생각으로 잘 썼다고 생각한 기사들을 하루에 두 편씩 필사하고, 닥치는 대로 듣고 닥치는 대로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방영 중인 드라마 중에 두 편 정도는 빼고 거의 모든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고, 모든 신곡들을 일단 몇 번 듣고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시작했던 계기였던 영화는 오히려 잘 보지 않고 있네요. 글 솜씨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잘 쓴다'라는 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가끔씩 숨어서 잘 썼다고 생각한 칼럼이나 기사를 필사합니다. 그러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많이 보는 이유는 이제 일이 아니라 애정 때문이 됐습니다. 많이 보게 되니 제작진, 배우들의 수고가 보이더라고요. 이들의 노력과 결실을 애정 합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투정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래서 애청하던 드라마의 시청률이 오르면 덩달아 기뻐하기도 합니다.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밴드 음악만 주야장천 듣던 사람이 지금은 가끔 코인 노래방에 가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듣지 않았던 보석 같은 곡들이 많았다고 느낍니다.
드라마와 노래를 듣다가 드는 생각도 많습니다. 이들이 주는 풍부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느끼는 감정들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는 정말 사랑하고, 누군가는 처절한 이별의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는 감정들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행복하고, 누군가는 좌절의 늪에서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감정도 느낍니다. 그럴 때면, 저는 그들의 주변을 공전하면서 각자의 중력들을 느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삶들이 어떤 궤도 속에서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본 겁니다.
오늘은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가 삶의 궤도를 잃지 않기를 정말 마음 담아 기도하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행성들이 각자의 우주를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 우주에는 자신의 행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곁에는 정말 조그마한 위성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누군가의 삶에서 위성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살다 보면 생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좌절도 있을 것이고, 아픔도 있을 것이고, 슬픔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생기는 애정들도 있습니다. 하다 보면 생기는 감정들도 그저 당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당신의 자전을 멈추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 역시 오늘도 열심히 자전하고 공전했습니다. 당신도 오늘, 그리고 내일 열심히 자전하고 공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언젠가 서로의 궤도가 우연처럼 맞아떨어져서 우리가 가까워졌을 때, "잘 지냈나요?"라는 물음보다 "잘 지내고 있었네요"라고 말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저 역시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쉽게 답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당신이라는 행성들을 공전하는 삶을 위해서였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