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 수 있는 곳을 찾자

서울에서 원룸 찾기

by 안태현

EP.1-2 살 수 있는 곳을 찾자.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내 월급에서 이것저것 다 떼고 월세로 최대로 쓸 수 있는 금액은 얼마인가. 일단 보증금은 부모님이 빌려주신 300만 원이 있으니, 월세만 계산하면 됐다. 그 결과 내게 주어진 값은 최대 50만 원이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서울 지리와 물정에 어두웠던 나는 우선 같이 생활하던 친구 집 근처부터 모색했다. 그러나 역시나. 동교동과 서교동 인근에 그 가격으로 살 곳을 구한다는 건 대책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한강 이남을 노렸다. 회사는 광화문 근처에 위치했으니 출퇴근 왕복 1시간 30분이라면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우선 찾은 곳은 신도림이었다. 여기서 나는 느꼈다. 살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정말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라는 것을.


‘살 수 있는 곳’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내가 이 보증금과 월세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곳과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뜻. 우선 내가 가진 예산으로 서울에서 제대로 된 방을 찾을 수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택지란 옥탑방, 반지하, 정말 좁은 곳으로 한정됐다. 게다가 그때의 나에겐 ‘네고’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빨리 살 곳을 구해야 하는데 방세를 가지고 이리저리 흥정하는 귀찮음이 싫었고, 게다가 그때의 나에게는 지금만큼의 넉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이 이끌고 다니는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처음에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갔던 집을 보여달라 했더니 ‘이미 매물이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놈의 매물 사기는 중고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덕분에 부동산 중개인의 차를 타고 다양한 원룸을 돌아봤다. “얼마까지 생각하고 오셨어요?”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마치 용산전자상가의 컴퓨터 상인과 같은 어조였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예산보다 조금 더 깎은 금액을 제시했다. “300만 원에 45만 원 정도요.”라고 내가 말하자 부동산 중개인은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택도 없다는 거였다. 신축이 좋냐, 구축이 좋냐고 말했다. 나는 둘 중 어느 곳도 상관없으며, 그래도 깔끔한 곳이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실수는 중개인이 ‘깔끔한 곳’을 ‘신축’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지금에서 돌아보자면 그때 구축을 위주로 집을 찾아다녔다면 서울에서의 첫 집을 찾는데 그다지 품을 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 역시 지금의 나니깐 하는 생각이다.


하여튼 중개인은 나를 신축 위주로 데리고 다녔는데, 그때 느낀 점이라면 서울에는 정말 다양한 집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다양한 집이라는 말에는 ‘정말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이야?’라는 질문이 튀어나오는 기상천외한 집이 넘쳐난다는 뜻이 담겨있다. 처음으로 만난 방은 위치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데, 마치 홍콩 구룡성채를 방불케 하는 위생을 자랑하는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단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는데, 방의 상태는 말도 안 됐다. 방에는 창문도 없었으며, 유일하게 화장실에만 창문이 달려있었다. 3층 정도였는데 집의 사이즈도 말이 안 됐다. 고시원보다는 클지 몰라도 약 2평 남짓한 여유 공간만 주어지는 환경은 바로 내게서 “다른 곳으로 갑시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사실 여기서 이 부동산 중개인의 고도의 심리전을 엿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집을 최악의 곳으로 보여주면 다음 집은 자연스럽게 ‘이 정도면 살만하지’라는 감정이 들게 만들어 계약을 이끌어내기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나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나는 이런 부동산 중개인의 심리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두 번째 집은 급한 매물이거나 가장 자기에게 커미션이 많이 떨어지는 집일 터였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방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더니, 내게는 “아까도 다른 분이 보고 가셨는데, 빨리 계약하시면 안 뺏길 수도 있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때 느꼈다. 아, 이 중개인과 방을 돌아보다가는 호구되기 쉽겠다는 걸. 그래서 예의상 한 군데만 더 돌아보고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고는 다른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KakaoTalk_20230604_180555087_02.jpg


“구축도 괜찮습니다, 어디든 가죠.”


두 번째 부동산 중개인은 그 지역에서 꽤 오래된 부동산을 찾아서 연락을 걸었다. 그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집주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꼭 집을 구하리라라는 마음을 먹고 두 번째 부동산 중개인과 ‘방 투어’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구축도 괜찮으니 내 예산에 맞는 곳으로 찾아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방들의 상태였다. 첫 번째 부동산 중개인에게 소개받았던 집들도 기상천외했는데, 두 번째 중개인에게 소개받은 집들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한 곳은 삼각형 모양의 방이었는데, 농담이 아니다.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이란 사각형 모양이어야 하는데 이 삼각형 구조의 집은 침대를 놓고, 책상을 놓게 되면 주방 사이 중간 지점에서만 생활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보증금 500만 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쉽게 포기했다. 속으로는 보증금 500만 원, 월세 50만 원에 이런 집을 내놓은 집주인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일까라는 분노까지 들끓었다. 또 다른 집은 약 3평도 되지 않는 사이즈였는데, 침대가 들어갈 공간도 없었다. 정확하게 180cm의 키를 가진 남자 두 명이 누우면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이즈였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가 4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정말 그곳을 보고는 ‘그냥 자존심 다 접어두고 고향으로 내려갈까?’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부동산 투어까지 마치고 나는 꽤 생각이 많아졌다. 서울에는 도대체 얼마나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는 곳이 무궁무진할까. 과연 이 정글 같은 곳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까지 엄습했다. 그렇지만 늘 자존심이 문제였다. 이미 영화라는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이겠노라고 마음을 여러 번 되잡았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은 신촌이었다. 대학가라면 그래도 정상적인 집이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것 역시 서울 물정에 어두웠던 자의 패착이었다.


IMG_2240.JPG 첫 자취방 어귀에서, 그래도 풍경만은 좋았다는 추억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실수였다.’


신촌에서 방을 구할 시점은 정말 찌는 것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습도가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방을 돌아다닐 때 잠깐만이라도 부동산 중개인의 차에 타서 에어컨을 쐬는 게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나 같은 상황에는 방을 선택하는데 제대로 실수를 하게 된 케이스였다.


신촌에서 처음으로 방을 보러 간 곳은 한 하숙집이었다. 밥도 나오는 곳이지만 유일한 단점이라면 공동생활이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나란 사람이 공동생활과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대학교 1학년일 때,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는 이미 생활관 사감에게 여러 번 불려 가 주의를 받았던 사람이었고, 결정적으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생활하는 건 딱 질색이던 사람이었다. 합의된 생활이 아니고, 강압적이고 규율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그래서 찾아 나선 두 번째 방은 반지하였다. 300만 원에 45만 원이었던 이 반지하방은 그냥저냥 생활하기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햇빛도 잘 들어왔으며, 곰팡이도 없었다. 문제라면 방의 크기였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책상 하나가 들어가면 나머지 공간에는 지나가는 통로만 생겼다. 게다가 웃긴 건 화장실 하나만은 정말 컸다는 건데, 화장실 공간을 조금만 줄였다면 사람이 살기 쾌적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여러 군데의 방은 다들 평균은 됐다. 유일하게 문제라면 월세였다. 보증금 300만 원을 맞추려면 55만 원은 내야 했다. 10만 원 차이가 그때의 나에게는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나는 그 10만 원을 아끼자고 반지하방 계약서에 내 이름을 날인했다.


‘실수’였다는 건. 역시나 반지하라는 점이었다. 햇빛이 잘 들어오고, 곰팡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반지하’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발품을 팔아서 선택한 것이 반지하라니. 그때 내가 왜 반지하를 선택했을까. 정말 10만 원의 월세차이였을까. 아니면 찌는 것 같은 더위에 어떻게든 빨리 방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귀찮음이 컸던 것일까. 어쨌든 계약서에 내 이름을 날인한 상황에서 바뀌는 건 없었다. 그리고 최악의 실수는 방을 2년으로 계약했다는 것. 이건 나를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최악의 패착이었다. 왜 패착인지는 이제부터 펼쳐지는 2년 동안의 반지하 생활의 고군분투를 통해 들려드리겠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어쩌다 올라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