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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는 다른 존재가 있다

by 안태현

EP.2-1 반지하에는 다른 존재가 있다.


신촌에 위치한 반지하방을 보러 갔을 때, 눈에 띄던 물건이 있었다. 바로 제습기였다. 빨래 건조대 바로 옆에 있었기에 ‘아, 그전 세입자가 쓰던 걸 두고 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주 순수하고 멍청했던 생각. 당연히 제습기는 그 반지하방의 옵션이었다. 제습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습도가 엄청 높기 때문이다. 반지하는 구조상 땅에 묻혀있기 때문에 벽 자체가 수분을 머금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나마 채광이 좋고 환기가 잘 된다면, 습도 배출이 쉽지만 거의 대부분의 반지하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지하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실제로 반지하는 원래 사람이 사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반지하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전쟁 대비 용도였다. 방공호 혹은 진지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촌향도 현상으로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꼼수로 사람을 살게 만든 게 반지하방의 시작이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일반 주택이 4층까지만 허가가 나는 상황에서 세입자를 더 받기 위해 반지하방을 만들어서 임대료를 더 거둘 수 있어서 좋았고, 서울시 입장에서는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좋지 않은 건 싼 월세에 끌려 그곳에 들어간 세입자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중의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초반 두 달까지는 거뜬했다. 의외로 채광이 좋은 집이어서 곰팡이 걱정은 없었고, 블라인드로 창문을 가려놔서 내 사생활 침해 걱정은 안 해도 됐다. 하지만 끝판왕 보스들은 원래 뒤에 등장하지 않나. 아직 그 보스가 남았으니 바로 ‘벌레’였다.


내게 남은 유일한 반지하방 사진이다.


“이보게, 나랑 동거하지 않겠나?”


집주인은 분명 동거인이 있을 경우 신고하라 했고, 나 역시 동거인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내 반지하방에는 동거하는 사람만 없을 뿐이었지, 꽤 많은 동거 ‘벌레’들이 존재했다. 꼽등이는 물론이거니와 바퀴벌레, 그리마, 거미 등 웬만한 반지하방에서 나올 수 있는 벌레들이 우리 집에서 출몰했다. 가장 처음 나를 반긴 건, 꼽등이였다. 화장실에서 그놈을 처음 마주쳤을 때를 잊지 못하는데, 벌레를 정말 벌레 보듯이 혐오하는 나는 집에 들어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그놈을 보고 바로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약 5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저 놈을 잡을 수 있을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잡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잡지?’였다.


궁금한 게 생기면 뭐다? 바로 네이버 지식인에 들어갔다. 정말 이런 고민이 있는 사람이 많았는지 지식인에는 꼽등이를 잡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소개돼 있었다. 그중에서 내 눈을 가장 많이 끈 건 뜨거운 물로 꼽등이를 수장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바로 주전자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팔팔 끓어라, 내 오늘 저 꼽등이와 결판을 내겠다’라고 생각하고 기도했다.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저 사탄을 내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물이 끓기까지 계속해 기도했다. 그리고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아주 빠른 속도로 끓는 물이 마련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만약 내가 물을 끼얹을 꼽등이가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온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에서 스쳐간 것. 그래서 나는 아주 소심하게 문을 조금만 열고, 미친 듯이 물을 끼얹어댔다. 그때 문틈 사이로 팔짝팔짝 뛰어다니던 꼽등이의 모습은 여전히 내게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강인하게 남아있다.


첫 번째 구마의식이 거행된 뒤, 나는 다시 한번 뜨거운 성수를 준비했다. 원래 전쟁에서는 확인사살이 필요하다. 섣불리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 반격을 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구마의식이 진행됐다. 이번에도 문을 살짝 열고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1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행히 꼽등이는 아주 알맞게 익어 있었다. 아니, 악령이 힘을 소진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휴지를 엄청 풀어 그놈의 사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 고민도 없이, 그 사체를 변기통 안으로 수장시켜 저 먼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마치 갠지스 강 하류로 시신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의식과도 같았다.


반지하 창문을 열면 이런 자연의 풍경 같은 게 보였다. 물론 과장이다.


악령은 쉽게 구마 되지 않는다.


한 차례의 소동을 겪고 난 후, 네 달이 지난 시점이었나.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상냥하게 내게 다가와 마침 지금 방 사이즈 보다 조금 더 큰 옆방이 비었는데 거기로 이사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월세는 똑같았다고 했기에, 아주 감사하게 아주머니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건 내 또 다른 실수였다. 확실하게 방은 컸지만, 이전 방과 다르게 채광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던 것. 그리고 원래 있던 방보다 더 구석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게 됐을 경우, 다른 집의 화단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그때가 반지하방에 입성한 지 약 10개월이 된 시점이었는데, 덕분에 남은 계약 기간 14개월 동안 나는 단 아홉 차례 밖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잠시 에어컨을 틀고 바깥공기를 유입하는 방식을 택해야 했다.


물론,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꼽등이 구마의식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동거 벌레와 영원히 안녕일 줄 알았는데, 옮긴 방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벌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거였다. 첫 시작은 바퀴벌레였다. 나름 청결하게 산다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주말마다 대청소를 했던 나였기에, 과연 바퀴벌레 같은 놈이 나올까 생각을 했었다. 또한 이미 바퀴벌레 약 또한 미리 구비해 방구석구석에 붙여놓았기에 나의 방은 바퀴벌레로부터는 완벽한 성역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한 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퀴벌레가 등장한 곳은 빌트인 세탁기와 싱크대 수납장 사이의 틈이었다. 밤 9시쯤이었나. 잠을 청하려고 집의 불을 끄려는데, 그놈의 거대한 더듬이가 그 사이에서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생각을 했을까. 아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가방에 노트북과 옷 두 개만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그전에 함께 살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오늘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맞다. 나는 꼽등이를 성공적으로 구마한 경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퀴벌레에게는 그 경력이 잽도 안 된다는 걸. 그래서 그날은 친구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을 자면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그놈이 알아서 나갔다고 해주세요’라고.


그런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다음날 집에 들어가 남은 14개월의 계약기간을 채우는 동안에도 바퀴벌레는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혹은, 내가 보지 못했거나. 하여튼 이 일련의 소동을 겪고 나서, 나는 집을 옮길 때마다 세면대, 배수구에 트랩을 설치하고 방구석구석에 바퀴벌레 약을 도포하는 습관을 들였다. 또는 훈연 벌레 퇴치제로 먼저 방을 소독한 다음에 입주하는 방식도 택했다. 어쨌든 벌레라면 질색이고, 나와 동거하는 나도 모르는 어떤 개체가 존재한다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니깐. 하지만 다행이라면 반지하방을 탈출하고 나서는 어떤 벌레도 자취방에서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친구집에서 했던 기도가 하나님에게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지금은 신앙이 없지만, 하나님이 그래도 의리가 있으셔서 한 번 들어준 기도를 물러주시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벌레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한번 습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곰팡이, 청소의 문제다. 한 번씩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오는 이들이 하는 말이라면 ‘이미지와 다르게 굉장히 깨끗하게 산다.’라는 건데, 왜 내가 이렇게 깨끗하게 살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시작했던 청소가 곰팡이라는 이교도와 싸우기 위한 종교전쟁으로 퍼져나간 반지하방의 고군분투. 벌레 편이 여기서 끝났으니 곰팡이편으로 곧 찾아오겠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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