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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전쟁, 곰팡이 그리고 냄새

by 안태현

EP.2-2 반지하 전쟁, 곰팡이 그리고 냄새


반지하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함이 크다는 점이다. 땅에 파묻혀 있는 특성상 겨울에는 지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서 따뜻함이 커지고, 햇빛이 풍부하게 들어오지 않아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바로 반지하의 단점이기도 하다. 뭐든 양날의 검 같이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반지하는 이 장점과 단점이 아주 극명하다. 하니 따지고 보면 단점이 더 크다. 반지하의 단점은 여름에 아주 제대로 발휘되는데 바로 곰팡이의 습격이다. 흔히 결로 현상이라고 하는 건, 바깥 온도에 비해 실내의 온도가 높아 수증기가 벽에 달라붙어서 발생한다. 겨울 내내 바깥 온도보다 높은 방에서 습도가 생겨 벽에 결로 현상이 생겨 곰팡이가 생기면, 여름이 되어 이 곰팡이의 번식 속도가 높아지게 되는 사이클이 발생한다. 이 현상은 과학 공부를 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는데, 바로 내가 그 현상이 벌어지는 반지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곰팡이가 생기는 건 폐 건강에도 좋지 않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냄새였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극 중 이선균이 반지하에 사는 송강호 가족의 냄새를 지적하지 않나. 그 냄새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만 알 수 있는데, 바로 곰팡이 냄새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냄새들이 덕지덕지 신체와 옷에 달라붙으면서 생기는 것들이 다수다. 대개 사람들이 냄새를 청결의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이 곰팡이 냄새는 사실 청결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해도 곰팡이와의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없기 때문. 마치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백년전쟁처럼 끝날 것 같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지부진한 싸움과 같다. 그래서 나는 2년 동안 반지하에서 생활하면서 곰팡이, 또 냄새와 싸우는 방법을 여러 개 터득했는데, 친애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 노하우 중의 일부를 소개해주고자 한다.


common.jpg 반지하의 삶을 아주 잘 나타내준 영화 <기생충> 스틸컷


곰팡이를 잡으려면 습도부터 잡아야 한다.


곰팡이는 대개 벽의 구석에서 발생한다. 벽지가 발린 집이라면 벽지 내에서 곰팡이가 서식하기 때문에 이미 벽지에 곰팡이가 묻어 나왔을 때는 해당 벽 부분에서 상당 부분 이놈들의 번식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벽지를 뜯어내서 곰팡이를 제거하고 다시 벽지를 바르는 건데, 세입자 입장에서 이건 꽤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만약 집주인 몰래 이런 행동을 하면 바로 세입자의 자격이 박탈될 확률이 높다. 또 집주인 또한 그렇게 해도 곰팡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새로 벽지를 발라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경우가 없다. 아무래도 계약서에도 나와 있지만 집주인이 갑(甲)이고 내가 을(乙)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곰팡이 제거용 락스와 키친타월을 이용했다. 키친타월에 곰팡이 제거용 락스 원액을 듬뿍 묻힌 다음, 그걸 벽면에 도배해 놓는 방식이었다. 이건 벽지 안으로 락스가 스며들게 해서 곰팡이를 제거하는 방법인데, 임시방편이지만 꽤 효과가 있다. 그런데 단점이라면, 환기를 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 질식사의 위험이 있다는 것과 이 방법 사용 후 한 달 동안 옷에서 락스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하여튼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꼭 환기가 잘 되는 공간에서 하길 바란다. 물론, 반지하가 환기가 잘 됐다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말이다. 락스를 듬뿍 묻힌 키친타월을 약 반나절 동안 방치해 둔 다음에는 헤어드라이어나 제습기를 이용해 꼭 벽지를 제대로 건조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축축해진 벽지에서 더 많은 곰팡이가 번식하는 걸 눈으로 마주하게 될 거다.


락스를 사용한 방법으로 임시방편을 한 다음에는 곰팡이 예방을 하면서 이들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 이때 우선 되어야 하는 건 습도를 잡는 거다. 습도를 잡는 건, 거의 탈옥한 신창원 잡기처럼 까다롭다. 먼저 다이소에서 파는 전자 습도계를 놓고 집안의 습도가 60% 이상으로 올라가는 걸 막아야 했다.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동안 제습기가 틀어져있었다. 그 결과 나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것들이 얼마나 반지하에 타격을 주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나중에 한국이 물 부족 국가가 된다면 나는 제습기를 팔아서 물을 만드는 봉이 김선달 같은 전략을 취해야겠다고 이뤄지지 않을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자, 공기 중에 곰팡이를 잡았으니, 이제는 옷장 속의 습도를 막아줘야 했다. 우리 자취생들의 메카 ‘다이소’에는 옷걸이형 제습제부터 기존의 ‘물먹는 하마’ 같은 형태의 제습제들이 아주 싼 가격에 마련돼 있다. 이게 다이소의 광고를 받고 쓰는 글이라면, 더 자세하게 설명할 터이지만 그건 아니기에 그냥 이렇게 얼렁뚱땅 써둔다. 거두절미하고 방과 옷장까지 습도를 잡았다면, 이제 욕실에서의 싸움이다. 욕실은 자취방에서 습도가 가장 높은 구역이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특히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곰팡이의 주서식지로서의 역할을 아주 탄탄하게 하는데, 거의 이곳은 곰팡이의 요새라고도 할만하다. 그래서 어떤 집이라고 하더라도, 욕실에 꼭 창문이 달려있는 곳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욕실 문을 꼭 열어두고 생활하라고 말한다. 습도가 가득 찬 상태에서 문을 닫아놓으면 그곳은 아주 끔찍한 던전이 될 것이 뻔하다.


common (1).jpg 내 과거 반지하방 사진이 없어서 대체하는 영화 <기생충> 스틸컷.


근데 곰팡이만이 적이 아니다.


반지하에는 벌레, 곰팡이, 습도 외에도 꽤 수많은 적들이 숨어있다. 일단 환기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건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것 외에도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냄새의 문제다. 많은 자취생들이 요리를 하지 않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꽤 밥을 해 먹는 법이 많은데 이 이유는 나중에 쓰겠다. 지금은 환기에 집중해서 쓰자면 요리를 하고 난 뒤에 반지하는 그야말로 지독한 후유증을 입게 된다. 특히 고기라도 굽게 된다면 거의 이틀 동안 고기 냄새와 함께 할 수 있다. 어쩌면 최고의 가성비라고 생각 들겠지만 이 냄새들은 고스란히 옷에 배긴다. 아무리 좋은 섬유유연제를 써봤자, 반지하에서 생기는 그 특유의 냄새가 옷에 배기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특히 나같이 남자라고 하면 냄새에 더 취약하다. 흔히들 ‘홀아비’ 냄새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주범이다. ‘홀아비’ 냄새는 보통 체액이나 분비물이 섬유에 배어들면서 발생한다. 이것들이 가장 많이 숨어들어있는 곳이 바로 이불과 베개다. 또한 신체에서도 존재하는데 귀 뒷부분이나 목덜미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반지하에 살 때는 이불을 많으면 2주에 한 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세탁해 줬다. 베개의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했다. 또한 귀 뒷부분과 목덜미를 항상 뽀독뽀독 씻어줬는데 이것쯤으로도 반지하에서 생길 수 있는 ‘홀아비’ 냄새들을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냄새만 잡으면 끝이냐고? 천만에. 먼지와의 전쟁도 시급하다. 환기가 많이 되지 않을수록 먼지가 많이 쌓이는 법이지 않나. 특히 이 먼지에는 우리 신체에서 빠지는 머리카락과 체모, 각질 등이 뒤엉켜있다. 이런 요소가 뒤엉킨 먼지는 벌레들이 아주 좋아하는 영양분이다. 집에서 벌레가 많이 나온다면, 당신이 청소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한 이유다. 물론, 다른 집에서 나의 집으로 유입되는 벌레가 있겠지만 이 벌레들이 번식을 할 수 없게 만들려면 내 방 청결의 유지가 아주 중요하다.


덕분에 나는 거의 매일 청소기를 돌리거나 이틀에 한 번씩은 청소를 했다. 또한 주말이 되면 늘 대청소를 했다. 걸레로 먼저 집기들의 먼지를 닦고, 바닥 걸레로 바닥을 닦은 다음 청소기를 돌렸다. 그냥 건조한 상태에서 청소기를 돌리면 먼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이미 청소기를 돌린 장소에 또 먼지가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미리 걸레로 바닥을 닦아 먼지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고 청소기를 돌리면 아주 깨끗한 청소를 할 수 있다. 정말 이 청소 방법 하나만으로도 집안의 먼지가 많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바쁘지 않다면 따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에 나온 방법만 잘 따라 하면 반지하에서 사는 것도 꽤 버틸만하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반지하는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하는 공간이라는 게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요점이다. 나는 저렇게 열심히 살림을 했지만 결국 반지하에서 나는 은은한 곰팡이 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광합성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두운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람도 어두워졌다. 그래서 계속해서 현실에 대한 암울한 생각만 가득하게 됐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서울 생활을 버티기커녕 내 삶도 못 버틸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버티는 삶에 대한 생각이었다. 팍팍한 반지하 생활과 힘든 서울 살이를 버티게 해 줬던, 내 삶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 수 있었던 나만의 ‘버티는 삶에 대한 철학’을 이제 말해야 할 때가 됐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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