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 서울, 버텨야 산다 : 발악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살다 보면 외로움과 고독함이 필연적으로 밀려오는 법이다. 고향의 친구들도 주변에 없을뿐더러, 가족들과도 만나기 어려우니 당연하다. 또한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아무런 온기도 없이 텅 비어있는 공간을 마주할 때면 이 외로움이 더욱 커진다. 반지하에 살 때는 이 외로움이 더 커졌는데, 그래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거나 밖으로 싸돌아다니면서 이 적적함을 달래고는 했다. 어쨌든, 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계속 지내다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로움은 애정적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건 오롯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서 혼자 사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인데,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고독사를 해도 과연 누가 언제 발견해 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섞인 것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의 나는 엄청난 박봉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다가는 더 못 버티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는 장난식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라고 했지만, 전혀 진심이 섞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봤을 때, 어떤 규칙적인 회사 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똑같은 일상만 보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서 애쓰려고 할 게 뻔했다.
나는 이 각박한 서울 생활 속에서 어떻게든 뭔가로 외로움과 고독함, 박봉에서의 서러움을 버티기 위해 애썼다. 그 첫 번째 방법은 독서 모임이었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했기에, 독서 모임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자기 계발 도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남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 것보다 내가 끌리는 책만 읽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 가서는 책 얘기를 찔끔하다가 결국 이상한 주제로 넘어가고는 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뭔 저런 놈이 다 있어?’라고 하겠지만, 자기 계발 도서나 과학 도서를 읽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철학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라고 한다면 밤새 왈가왈부 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두고 말을 하고 있기란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사람은 원래 하던 취미와 도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독서 모임을 그만두고 철학 스터디를 시작했다. 역시 개버릇 남 못준다고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철학과 관련된 취미 생활을 즐겨야 했다. 철학 스터디의 시작은 오래전 영화 모임에서 만났던 친구와 그의 남자친구, 그리고 내가 모이면서부터였다. 평소 영화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의 7시간 넘게 입을 털었던 이들이 모여서 철학사 책 하나를 같이 읽고 각자 주제에 대한 철학 논쟁을 펼치는 식이었다. 책은 버트런트 러셀의 『서양철학사』였다. 이곳에서 우리의 주제는 늘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가’로 흘러갔는데 신과 인간이 있다면 과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어떻게 대화가 펼쳐졌는지를 재연해 보겠다. 내 친구가 A이고, 친구의 남자친구는 B다.
B 曰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그것 역시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A 曰 “그렇다면 인간이 하는 행동은 신이 개입한 것인가, 인간은 결국 자유의식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사는 것 아닌가.”
나 曰 “나는 신이 없다고도 생각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냥 신은 RPG 게임의 운영자고 우리는 플레이어인데 게임을 하는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이었다. 이야, 이거 얼마나 건전하고 똑똑한 취미인가. 하지만 결국에는 스터디를 하는 날, 마지막은 술 마시고 개소리 지껄이면서 헤어졌지만. 늘 마지막의 개소리는 내가 담당했는데, 나는 “이딴 거 다 필요 없고 내가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들면 아주 잘 만들 자신은 있다”라는 식이었다. 개소리는 늘 개소리로 넘어간다.
버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많은 취미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 입방정 떨기를 계속하고 있던 중에 철학 스터디를 같이 하던 친구의 남자친구와 의견이 맞아서 팟캐스트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영화 평론과 관련된 팟캐스트였는데, 친구의 남자친구가 A라면, A가 진지한 영화 이야기를 하면 나는 거기서 드립을 치면서 다른 영화적 해석을 내놓는 방식이었다. 천생이 진지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어디서든 유머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유머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또 스튜디오 녹음 파일을 받으면 내가 일일이 다 음성 편집을 해냈다. 설명은 필요 없으니깐 결과는 어땠냐고? 녹음 비용에 비해 수익이 너무 안 났고, 두 사람 모두 일이 너무 바빠지면서 흐지부지 됐다. 아마 녹음 비용에 비해 수익이 많이 났다면 일이 바빠도 같이 했겠지만, 수확이 없으면 농부는 농사를 포기하는 법이다. 그 결과물은 현재 팟빵에 ‘씨네마트’라는 콘텐츠로 남아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서울에 올라와 함께 지냈던 친구와 함께 단편영화를 찍었다. 영화의 이름은 <안양>이다. 지금도 어떤 OTT에서는 서비스 중인 단편영화이기에 궁금하시다면 찾아보는 것도 좋다. 친구가 감독을 하고 내가 시나리오 각색과 편집을 맡았다. 쉬는 날이면 현장 로케이션을 함께 돌았고, 촬영 때는 마침 휴무가 끼어 연출부로 함께 했다. 편집은 퇴근을 하면서 친구와 모여서 함께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과거 조그마한 영화 경력이 있다고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후 이 영화가 몇몇 단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관심을 받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나는 다른 단편영화 작업에 곧바로 돌입했다.
이렇게 여러 개를 도전하는 동안 벌써 서울에 올라온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리고 있었다. 돌아보면 아니 이 짧은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여러 개의 취미 생활을 가지고, 팟캐스트를 하고, 영화를 찍었는지 싶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서울이 그만큼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기회가 있으면 위기도 있는 법이다.
사람은 원래 정말 바쁘게 살다 보면 외로움과 고독함을 다스려야 하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정말 필요했던 건, 고독함을 벗어날 수 있는 내면의 치유였지만 나는 바쁘게 살아가면서 오히려 그런 것들을 외면하려고만 했다. 그래서 이 시간 동안 나는 내 속에서 곪고 있는 고름들을 제대로 치료해내지 못했다. 버티기만 했지 버티는 방법을 잘못 고른 거였다. 그냥 이 시간은 어떻게든 서울에서 발 붙이고 싶었던 나의 발악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바쁜 생활을 보내면서 썩어가고 있었던 내 내면과 내 삶의 반경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다. 그리고 2년의 반지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는 여정들을 얘기해 보겠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