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행복하지 않은' 기혼유자녀 여성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늦지 않게 결혼도 했고, 몸누일 만한 집도 있고, 봉급생활자이다. 남편은 특별히 문제 없고, 난임이 흔한 시대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낳는 복도 누렸다. 아이들은 (지금까진) 잘 자라주고 있고, 조실부모 하지 않았고, 전과도 없고, 몸도 죽을만한 병은 (아직) 발견되진 않았다. 특별히 문제는 없는 삶이다. 근데 나는 왜 '행복하다'고 말하기에 주저함이 있을까?
처음에는 스스로를 혼냈다.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느냐고 너무 많이 바란다고. 이러다가 가족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직장에 문제가 생겨봐야 네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더군다나 우리는 항상 '작은 것이 아름답다',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듣고 자라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때면 나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이미 허락된 행복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서.
행복이 사소한 것처럼 조금씩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직장에서의 크고 작은 좌절, 인생이 내주는 숙제를 해결하다 지치는 날들, 부모님의 건강, 남편과의 갈등, 마음에 들지 않는 몸매 (그리고 올라가는 체중),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지 않을 때. 안정은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은데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 하지만 불만족요소들 가운데 가장 스스로가 한심하고 기운빠질 때는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뭔가 행복하지 않은 내가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을 때"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나왔다. 만족스럽지 않은 은퇴를 한 선배를 만났다. 꼭 들어오고 싶었던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왠지 행복하지 않았던 내게 큰 사건이었다. 둘다 인생 후반부의 모습에서 만나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즈음 코로나에 걸려 출산후 처음으로 침대와 한몸생활을 하면서 생각을 해봤다.
지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을 읽고 공감했다. 내가 주식에서 대박이 터지거나, 비싼 아파트에 당첨되거나, 남편이 갑자기 나를 공주처럼 모시는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온 지금 채워나갈 페이지보다는 이미 채운 페이지가 많아 뭔가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복을 추구해야 할까.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혹은 모바일 메신저로, 최근의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같이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봤다. 공감을 받으면 기분이 나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나 직장동료와 인생의 괴로움을 나눠봤자 그때뿐, 결국 문제 해결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공감하면 남의 이야기도 언젠가 들어주어야 한다는 마음의 빚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이것 저것 해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한 40대 기혼 유자녀 여성의 행복찾기 프로젝트의 이야기다. 당신의 행복은 강도인가 빈도인가? 어떨때 행복한가? 걱정이 적은 상태가 되면 행복한가? 이미 행복한데 불행하다고 자기연민이 심한 것은 아닐까? 기혼유자녀 여성의 행복조건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조건은 많이 다를까? 내 이야기를 해볼 테니, 당신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