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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코지

미안해

by 김형록
화면 캡처 2024-11-18 221651.jpg

나솔이가 8살 때 학교에 입학하니 선생님께서 이 아이가 너무 작으니 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병원에서는 나솔이의 뼈, 성장판, 호르몬, 피, 근 육, 세포 모든 것이 정상적인 비율로 잘 성장 중이나, 성장 자체가 느리며, 뼈 나이가 5살밖에 안되고 급성장기가 없었으므로 꾸준히 자라준다면 170cm까지 자랄 것으로 예상되며 8살로 보지 말고 5살로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럼 됐지 뭐….

그 이후로 나는 나솔이를 그냥 늦게 천천히 자라는 아이로만 봤다. 그런데 나솔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형아들이 자꾸 나를 던져' '친구가 때려서 울었어'라고 말을 하면 아비로서 화가 나기도 했다.

게다가, 나솔이는 아직도 체력과 근력이 약해 툭 하면 공부하다 잠들어 버리고, 받아쓰기하면 연필 하나를 꽉 못 잡아 주먹으로 잡듯이 잡아 힘겹게 쓰고, 땀까지 흘린다. 사람들이 조그마한 나솔이를 보고 '아이고~ 귀여워, 몇 살?'하고 물어보면 '칠암초등학교 1학년인데요' 하고 나솔이가 대답한다. 그러면 물어본 사람도 적잖이 놀라고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병원에서 그렇게 말하고 이제는 나도 그러려니 한다.


나솔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친척들이 사천 계곡에 다 모였다. 나솔이의 고종사촌 성언이(초1), 지민이(초1)도 오랜만에 만나 다 같이 노는데 나솔이가 그들보다 머리 하나 크기만큼 작고 팔다리도 훨씬 작고 힘도 너무 모자란다. 게다가, 얘들은 이미 6~7살 때 앞니 2개가 다 빠지고 새로 나서 지금 초1인데 새 이빨이 멋지게 뻗어 나와 자리를 완전 다 잡았다.

그런데, 나솔이는 이제 앞니 2개가 빠져 식구들마다 보고 귀엽다고 난리다. 그들 속에 있는 나솔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솔이는 분명 5~6살이다. 분명히 5~6살의 몸과 성장속도와 생각과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나솔이는 늦게 천천히 자란다고. 그러면, 나솔이는 이제 6살이다. 나솔이를 6살로 봤으면 이 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이해해 줄 수 있었는데 난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이기 직전까지 초2, 9살로 보고 늘 윽박질렀다. 제발 울지 좀 마라 고, 왜 그렇게 힘이 없냐고, 집중 좀 하라고, 밥 좀 많이 먹으라고, 제발 맞고 오지 말라고, 늘 윽박지르기만 했다. 나솔이 학교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오히려 나솔이를 특별한 아이로 이해해 주고 기다려 주고 배려해 주는데, 아빠인 나만 나솔이를 초2라고 단정짓고 혼자 힘으로 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나솔이의 키는 안 재보고 고사리 같이 작은 손을 주먹 쥐게 해서 힘이 생겼나 보려고 내 손바닥에 쳐 보는 것만 시켰다. 작아서 무시당하고 들어오는 아들을 보기 싫었던 못난 아비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 아직 엄마 곁에 자야 하고, 씻겨 보면 여전히 등에 솜털이 가득한 아기 몸이고, 잘 때는 젖비린내가 나고, 속눈썹이 길게 나와 누가 봐도 아직 6살밖에 안 된 아기 맞는데….

사천 계속에서 물총놀이가 시작됐다.


친척 중 자형(50) 성빈이(중2) 다은이(초5)가 나만 공격하고 있었다.

내 물총에는 물도 떨어지고 3 명이 나를 에워싸고 공격하니 이길 수가 없어 얼굴을 가리고 그저 당하고만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에서 손을 떼고 쳐다보니 나솔이가 이 3명을 다 물리칠 만큼의 물을 등에 지는 물통에 가득 담아 그 자그마한 등에 지고 나에게 달려와 내 앞에서 적군 3명에게 물총을 쏘는데 물통 끝에서 나온 파이프가 물총과 연결이 안되어 파이프 끝에서 물은 새고 있고 물총은 바람만 쉭~ 쉭~ 나가고 있었다.

나솔이가 이 파이프 끝을 잡아 물총에 연결하려고 엎드리자 파이프 끝이 뒤로 끌려 숨는다.

그걸 잡으려고 뒤로 돌고 또 돌고…. 고양이가 자기 꼬리 잡으려고 맴돌듯이 나를 구하러 온 나솔이가 적군 3명에게 나 대신 물총을 맞으며 그렇게 맴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웃으며 나솔이에게 까지 물총을 쏘고 있었다.

내가 나솔이에게 다가가 파이프 끝을 잡아 물총에 연결해 주니깐 나솔이 가슴이 참새가슴처럼 콩닥콩닥 뛰면서 하는 말이,

“씩씩…. 나쁜 사람들~ 나쁜 사람들~ 감히, 우리 아빠를….”

“으휴…. 나솔아…. -.-”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와 앞이 잘 안보였는데 다행히 적군들이 내 얼굴에 물을 쏴 주었다.

세상 사람들아, 내가 너희들 발을 다 씻겨 줄 테니 제발 우리 착한 아기 나솔이에게 해코지만 하지 마라.

나솔아, 아빠가 그동안 해코지해서 정말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나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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