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장대비

by 김형록

밖에 장대비가 내리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 생각에 잠긴다.


우리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셨다. 농사를 짓는 손이라 할머니의 손은 맨날 트고 갈라져 매일 밤 ‘안티푸라민’을 바르셨다. 그 손으로, 자고 있는 내가 예쁘다며 이마를 쓰다듬으시면 나는 할머니 손이 따가워서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누웠다. 내 학교 도시락 반찬도 그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신 깻잎, 호박, 감자 등등이었지 동그랑땡, 소시지 그런 건 아예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반찬통 여는 게 제일 부끄러웠다.


게다가 할머니의 밭이 하필이면 내가 다니는 거창 대성고등학교 뒤편 언덕 너머에 있었다.

할머니는 남루한 모습으로 농기구를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밭에 가실 때마다 내가 다니는 학교를 꼭 지나가셨고 때로는 리어카를 홀로 끌고 가기도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내 친구들이 먼저 발견하고 “노가(록아), 너희 할머니 아냐?”하면 나는 남루한 할머니가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어느 날,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할머니가 밭에서 내려와 집에 가시는 길에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 중앙현관에 들어오셨다. 우산을 써도 비가 너무 세게 내려서 옷이 다 젖을 지경이었다. 복도에서 놀던 학생들이 장대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어오신 낯선 할머니에게 몰려들었다.

할머니는 눈에 보이는 아무 학생에게 “우리 노기(록이) 어디 있는지 아니?” 하며 물어보셨다. '우리 노기‘를 모르는 학생들이 ‘노기’의 진짜 이름을 다 말씀해 보라고 하자 우리 할머니는 내 이름 ‘김형록’을 말씀하지 않고 “우리 노!기!, 김! 노!기!” “김! 노!기!”라고 크~ 게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그런 학생은 없다고 수군거리는 중에 내 친구가 우리 할머니를 발견하고 교실로 모시고 왔다.

할머니는 반가움에 환하게 웃으시며 “아이고, 우리 노기, 여기 있었네.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 이 우산 쓰고 집에 오너라” 하시면서 우산을 건네주셨다. 나는 갑자기 교실에 나타난 남루한 할머니를 보며 반갑기는커녕 당황한 표정으로 “아…. 알았어. 그럼, 할머니는 어떡해?” 하자 할머니는 내 표정을 읽고 “나는 괜찮다” 하고 급히 교실을 나가시더니 머리를 푹 숙이고 총총걸음으로 장대비 쏟아지는 운동장 속으로 마구 걸어가셨다. 장대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또 할머니 몸이 얼마나 작은지, 운동 장 3분의 1밖에 안 가셨는데도 내 시야에서 잘 안 보였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거동하기가 불편하게 되어 김해 삼촌댁에 계셨고 나는 진주에 살면서 가끔 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당신의 ‘우리 노기’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새 힘을 얻는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는 '우리 노기'를 배웅해 주는데 그 새 힘을 다 쏟으셨다.

어느 하루는 기력이 없으면서도 나를 따라 나오시다 거실에서 넘어져 엉덩뼈에 금이 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몇 달 후, 내가 캐나다로 공부하러 간다고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 ‘우리 노기’ 왔다고 반가워하셨지만, 상체만 겨우 일어 나 앉으셨다.

“우리 노기, 비행기 타고 외국에 공부하러 가냐?”

“예”

“아이고, 멀리도 가네”

할머니는 환자복 뒤쪽에서 3만 원을 꺼내어 주시면서

”비행기 타고 가다가 맛있는 거 사 먹거라’ 하셨다.

”나는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할머니 많이 사 드시고 얼른 퇴원하세요 “

하며 그 3만 원을 밀어냈지만 할머니는

”나는 괜찮다. 우리 노기, 할머니 말 잘 들어야 예쁘지…. “ 하면서 다시 내 손에 꼬옥 쥐여주셨다.


캐나다 도착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또 시차가 안 맞아서 연락도 못 하다가 장대비가 내려 밖에 나갈 수도 없게 되어 집에 있었다. 캐나다 밤 2시면 한국에는 저녁 7시 즈음. 이제 전화하면 가족 누구라도 전화를 받겠구나 싶어 우산을 쓰고 나가 공중전화 부스에 서 수신자 부담으로 국제통화를 했는데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는? “

”몰랐니? 벌써 돌아가셔서 천국 가신 지 오래야 “

”왜? 할머니 괜찮다고 하셨는데, 왜? 왜? 왜? “

그날 밤, 이국땅 공중전화 부스에서 철이 든 ‘우리 노기’는 미친놈처 럼 펑펑 울었다.

그때 장대비 내릴 때 정말 미안했다고…. 지금 살아계시면…. 당신의 ‘우리 노기’의 아들 나솔이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더파티 뷔페 센텀점에 가니 고운 음식이 많던데 그거 몇 점이라도 입에 넣어 드리고 싶은데….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꼭 말해 주고 싶은데….


* 나는 누군가에게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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