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헌트] : 언제나 사냥될 수 있음을

by 소울

줄거리 소개 [출처] 네이버 영화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를 둘러싼 한 소녀의 사소한 거짓말이 전염병처럼 마을로 퍼지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불신과 집단적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 관람 후 보시는 것을 권고합니다.

스포 다수.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비록 클라라의 말을 거짓말이었지만, 아동 성학대에 대처하는 어른들의 행동이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원장은 루카스보다 먼저 클라라의 말에 귀 기울였고, 최대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애썼다. 보통은 유치원의 원생들이 빠져나갈 것을 두려워해 다른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거나 뒤에서 합의를 조정해 조용히 넘어가려는 것이 대다수다. 하지만 원장은 모든 학부모들에게 알렸고 또 다른 피해자를 찾기 위해 애썼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루카스를 쉬게 하기도 했다. 물론 루카스는 결백하기에 루카스의 말을 좀 들어달라고, 아이의 말에 오류가 없는지 의심해보라고 외치고 싶지만 가해자보단 피해자(로 보이는, 특이 그것이 어린아이라면)의 입장을 더 들어주는 것이 맞기에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루카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실제 가해자가 자신은 죄가 없다며 변명하는 것도, 피해자를 협박해 본인이 유리한 쪽으로 답을 얻어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루카스의 편을 드는 것도, 원장과 클라라를 원망하는 것도 불편했다.


#확신의 오류


“모두 루카스가 그랬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학부모들이 한 말이다. 여기서 오류의 원인이 드러난다. 원장과 학부모들 모두가 루카스가 아동 성학대를 했다고 확신한 채 문제를 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문제든 의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초반에 원장은 클라라를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고 여러 번 설명한다. 클라라가 평소 자신이 상상으로 만든 것을 실제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거짓’을 ‘진실’인 양 꾸며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루카스와 클라라의 아빠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클라라의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아이야.


두 문장이 맞지 않는다. 클라라의 아빠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을 위해 그에 방해될만한 요소들은 스스로 조작하거나 은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클라라가 앞을 보지 못하고 선(line)을 보면서 가는 이유


아이는 너무 어려 무엇이 옮고 그른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시선만으로 앞을 나아가지 못하고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을 따라 밟거나 어른의 손에 의지해 나아간다. 처음 클라라가 원장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 그녀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그 이후에 어른들이 잘못을 바로잡아주며 올바른 길로 인도했어야 하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클라라의 길을 따라가 버린다. 나중에 클라라는 어른들에게 사실을 말하지만, 이미 그 길에 확신을 가져버린 어른들은 네가 지금 충격에 빠져서 기억이 삭제된 거라고 타이르며 정작 다른 가능성은 보지 않으려 한다. 결국 사실을 말하던 클라라라는 계속되는 어른들의 취조에 또다시 거짓말을 하고 만다. 어른들은 오히려 거짓을 사실이라며 클라라에게 세뇌시키고, 그에 혼란을 느낀 클라라는 실제로 루카스에게 두려움을 갖게 된다.



#소통


루카스는 이혼한 상태다. 아들의 양육 문제로 전 아내와 대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지금 당신은 전화 금지 상태가 아니냐며 화를 낸다. 루카스는 그럼 당신은 나한테 전화를 안 하고 나는 전화 금지 상태인데 대화는 언제 하냐고 따진다. 여기서 처음 소통이 꼭 필요하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드러난다. 한쪽의 소통망은 막혀 있고, 한쪽의 대화 방식은 무척이나 일방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소통 방식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한 편, 그만큼 쌍방향 소통 방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눈을 본다는 것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은 진실된 소통을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성당에서 루카스는 테오의 눈을 계속 뚫어지게 쳐다본다. 테오는 그런 루카스가 불편한 듯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계속 피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이가 거짓말을 할 때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죄책감과 불안감에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오가 루카스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는 이유도 그의 가슴 한구석에 혹시나 루카스의 말이 옳으면 어떡하지? 란 의심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당당하다면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냥


루카스와 그의 친구들은 재미를 위해 사슴을 사냥한다. 초반, 루카스가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과, 패닉(반려동물)의 시체가 왠지 겹쳐 보인다. 패닉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에겐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가장 죽이기 쉽고, 그러면서도 루카스에게 분노와 슬픔을 안겨줄 수 있기에 희생당한 것이다. 분노는 아래로 향한다는 말이 실감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루카스를 몰아낸 것도 이런 사냥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14세기 유렵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이 떠오른다. 그들은 정말 단지 마녀가 이단자이기 때문에 죽인 걸까. 우월감과 희열감, 그리고 마녀를 몰아내는 사람들 간의 동질감도 이유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루카스를 때리고 내쫓은 마트 직원들이 자신과는 관련 없는 루카스를 몰아내고 때린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는 어린 여자아이의 복수를 대신해 줌으로써 정의 구현을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를 위해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런 자신에 뿌듯하고 만족스러워했을 것이다. 동물이 아닌 인간의 사냥은 늘 ‘재미’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루카스를 향한 총알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당신도 언제나 표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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